[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라인건설이 시공하는 한 아파트 견본주택에서 정식 계약서(부동산거래계약신고서) 양식 대신 백지에 인감도장과 서명을 받는 촌극이 빚어져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29일 본지에 제보된 내용에 따르면 인천 검단신도시 A아파트를 공급하는 라인건설과 시행사인 라인건설 계열 이지종합개발은 지난 28일부터 정당계약에 돌입했다. 이날은 정당계약 첫날인 만큼,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예비계약자들은 견본주택 밖까지 길게 줄을 늘어섰고, 대기시간만 2시간 가량 소요됐다.

소동이 발생한 건 정당계약을 진행한지 3시간 정도 흐른 정오 즈음이다. 오전에 정당계약을 체결했던 계약자들 중 일부가 "지금 장난하는 거냐. 정식 계약서를 내놓으라"고 고성을 지르며 강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라인건설과 이지종합개발이 계약서를 인쇄하는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백지에 인감도장을 찍게 하고 서명을 받은 것이다.

해당 백지 계약서에는 '이 서류는 분양계약 용도로만 사용된다'는 식의 문구가 명시돼 있었지만 수억 원에 달하는 아파트(기준층 4억3000만 원)에 대한 계약인 만큼,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에 항의한 계약자들의 설명이다. 또한 인감도장이 찍힌 백지가 다른 용도로 쓰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몇몇 계약자들은 시공사가 '설계변경동의서'에 백지 계약서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백지 계약서가 담긴 사진은 순식간에 A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 인터넷 카페와 단체 채팅방 등을 통해 공유됐고, 아직 정당계약을 진행하지 않은 예비계약자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된 계약서가 준비될 때까지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 같은 소동은 일부 계약자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견본주택에 도착하자 순식간에 일단락됐다. 작동하지 않는다던 기계가 경찰이 나타나자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이후 정당계약을 체결한 계약자들은 백지 계약서가 아닌 정식 서류를 받을 수 있었다. 시공사·시행사의 사전 준비작업이 철저했다면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계약자는 "한두 푼도 아니고 억대 아파트 계약을 체결하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느냐. 알 사람들 다 아는 유명 브랜드 건설사가 맞는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계약자도 "그야말로 촌극이다. 정말 인쇄기가 작동하지 않았다면 얼른 근처에 가서 기계를 사오든, 빌리든 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느냐. 대형 건설업체가 왜 이런 일에 돈을 아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날 A아파트 견본주택에서 만난 분양 관계자는 "오후부터는 정상적인 서류로 계약을 진행했다. 단순 해프닝이었다"며 "아직 남은 정당계약 절차는 물론, 앞으로 시공부터 입주가 마무리될 때까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여 최고의 상품을 입주민들에게 선사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몇몇 계약자 사이에서는 앞으로가 더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A아파트 입주예정자협의회의 한 관계자는 "누군가가 나서서 지적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계속 백지 계약서를 썼을 것이다. 경찰이 출동하니까 갑자기 기계가 작동하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라며 "정당계약부터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앞으로 하자보수 등 입주 과정에서 있을 시공사·시행사와의 협의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