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서울 사는 것도 스펙이에요.”
몇 년 전, 모 기업 입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 온 고향 후배가 말했다. 소위 말하는 ‘지방대’를 졸업한 후 직장을 찾기 위해 서울을 오가던 그 후배는, 서울에 ‘먹고 잘 수 있는 집’이 있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예상 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형, 서울 와서 시험 한 번 치고 다시 집에 가면 돈이 얼마 드는지 아세요? 최소 10만 원이에요.”
시험 한 번에 5만 원 드는데…면접비 지급률은 30%
2020년 8월 기준, 서울시 인구수는 970만여 명이다. 경기도 전체 인구수가 1300만여 명이니, 수도권에만 2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는 셈이다. 수도권에 이처럼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가 몰려 있기 때문이다.
몇몇 광역시급 도시를 제외하면,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그나마 사정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대다수 중소도시에 사는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울며 겨자 먹기’로 서울행을 택한다.
그러나 이들 앞에는 또 하나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취업 준비 비용’이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지방에서 서울로 오는 데는 평균적으로 5만 원(왕복) 정도의 교통비가 든다. 여기에 식비가 추가로 소요되며, 시험이 이른 시간에 치러질 경우 숙박비까지 추가된다. 후배의 말대로 ‘최소 10만 원’이 필요한 셈이다.
만약 시험 전형이 2차, 3차까지 있는 회사라면 이 비용은 두세 배로 늘어나고, 여러 회사에 지원했다면 지출은 몇 배 더 많아진다. 수입이 적을 수밖에 없는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큰 부담이다. 이쯤 되면 ‘서울 사는 것도 스펙’이라는 후배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인>이 구직자 152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지난 8월 공개한 결과를 보면, 응답자 중 68.2%가 입사 면접 비용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면접 비용이 부담돼 면접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도 32%나 있었다.
때문에 응답자 중 79.5%는 기업이 지원자에게 면접비를 지급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업으로부터 면접비를 받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면접 경험자 중 31.8%에 불과했다. 날이 갈수록 취업 준비에 드는 비용은 상승하고 있지만, 그 부담은 오롯이 지원자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것이다.
고영인, 면접비 지급 의무화 법안 대표발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은 이 같은 청년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면접비 지급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9월 18일 대표발의했다.
고 의원은 “면접과 입사시험은 구인하는 회사가 필요해서 진행하는 것인 만큼 그에 따른 비용은 구인하는 회사가 지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아직까지 면접비는 주는 것이 특별한 것처럼 생각된 것이 현실이었다. 이러한 현실을 바로 잡고 싶었다”며 “조속히 이 법이 개정돼 청년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채용절차공정법에 ‘구인자는 채용을 위한 필기·면접 시험에 응시하는 구직자에게 필기·면접 시험 응시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내용이 추가된다. 지금은 기업의 선의(善意)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면접비 지급이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면접비 지급이 재정적으로 열악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을 더욱 약화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21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대기업들은 면접비 2~3만 원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소기업은 면접비가 부담스러워서 지원자들을 제대로 체크하지도 못할 것”이라며 “면접비 지급 여부는 기업 상황에 맞춰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지, 법으로 정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고 의원 측은 같은 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기업의 규모가 작으면 그만큼 면접자 수도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꼭 중소기업의 부담이 대기업보다 크다고 볼 수는 없다”며 “또 (이 법안이) 뽑는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지원자들을 불러 놓고 면접을 하는 관행을 좀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이어서 “법안을 보면 면접비를 의무화한다는 내용만 정해져 있고, 면접비의 기준과 방법은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할 수 있게 해뒀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차등을 두거나 하는 식으로 유연하게 운용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