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지율 조사 그거 믿을 수 있겠어요? 상식적으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전세 못 구해서 월세 들어가 살아야 되고, 자기 집 마련하려던 중장년층은 이제 자가는 꿈도 못 꾸고, 추미애 장관 문제니 공무원 피격 문제니 말도 안 되는 사건이 계속 터지는데 지지율이 이렇다고요?”
추석 ‘밥상머리 민심’이 반영된 8일자 <리얼미터> 지지율 발표 후, <시사오늘>과 만난 한 보수 측 인사는 여론조사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부여당 쪽에 불리한 이슈가 계속해서 터지는 와중에 추석 연휴가 시작됐음에도, 오히려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상승하고 국민의힘 지지율은 하락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문이 든다는 주장이었습니다.
TBS가 의뢰하고 <리얼미터>가 5일부터 7일까지 실시해 8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이 35.7%를 기록해 전주 대비 1.2%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국민의힘은 지난주보다 2.5%포인트 하락한 28.7%에 그쳐, 양당의 지지율 격차는 7%포인트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추세에 대해 <리얼미터>는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과 개천절 집회에 대한 정부의 제재 조치, 국민의힘 중앙청년위원회의 ‘하나님의 통치’ 표현 논란 등이 영향을 준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보수 측에서는 부동산 정책 실패, 추미애 장관 아들과 강경화 장관 남편 논란,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 등 갖은 악재에도 여당 지지율이 상승한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거시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사실 민주당 지지율 상승은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6월 23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2020 차별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10명 중 8명(82%)은 우리 사회의 차별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각한 차별은 성별(40.1%), 고용형태(36.0%), 학력·학벌(32.5%), 장애(30.6%), 빈부격차(26.2%) 순이었습니다. 어딘가 눈에 익은 항목들입니다. 그렇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반드시 변화를 보여주겠다고 공언한 부분들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취임 직후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을 발표했고, 공공기관 입사지원서에 학력과 학벌 기재를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빈부격차와 양극화 해소는 문재인 정부의 모토였습니다.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규제 등은 모두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편이었죠.
그러나 국민의힘에서는 차별 해소에 대한 의지를 느끼기 어려웠습니다. 성별이나 학력·학벌 차별 문제에는 아예 관심도 없어 보였고, 경제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와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는 이전의 기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국민은 ‘이제는 더디더라도 함께 갈 때’라고 말하고 있는데, 국민의힘은 ‘최대한 빨리 가는 방법’만 제시한 겁니다.
“민주당이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아예 방향 자체가 틀렸다.”
기자가 추석 연휴 민심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가 ‘기대 이하’라는 데 동의합니다. 여성들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공언했던 문 대통령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박원순 전 서울시장 등의 잇따른 성추문에 침묵하고, 안 전 지사 모친과 박 전 시장 빈소에 조화까지 보내는 문 대통령의 태도에 분노했습니다.
또 비정규직 제로화 정책과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규제 등이 오히려 역효과를 내면서 국민들의 삶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데도 공감했습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논란에도,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을 대하는 정부여당의 태도에도 적잖은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의힘이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정신을 전혀 읽지 못하고, ‘지금보다 잘 살게 해줄게’라는 개발독재시대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지금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데, 여전히 ‘성장의 총량’만 늘어나면 된다는 국민의힘의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라는 겁니다.
그나마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면서 국민의힘도 양극화 해소라는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내에서는 아직까지도 ‘보수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며 김 위원장에게 반발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이러니 국민들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변화할 의지가 있는지,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끝나면 다시 원상 복귀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말하면서 자기들은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모습만 보여준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아예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말도 안 한다.”
민주당에 등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국민의힘을 지지할 수는 없다던 한 30대 중반 회사원이 한 말입니다. 국민의힘이 한 번 고민해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요.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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