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종희 기자]
심의석의 <함석헌과 한국교회> 연재가 끝난다니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 저자의 글은 무더운 여름날 적당히 차가운, 그래서 소박하게 느껴지는 매실차 한 잔을 얻어 마시는 기분이었다.
이제 그 느낌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저자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법학도여서 그런지 단순히 한국 기독교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떤 것이 더 정의로운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 함석헌 이라는 인물을 통해 답해 나간다. 저자는 기독교의 교리중 하나인 대속(代贖), 그러니까 예수가 인간의 죄를 모두 대신해 갚았다는 원리에 대한 세상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이를 깨기 위해 온유하게 몸부림 쳤다.
'예수만 믿으면 자기 죄는 모두 사해지고 천국으로 간다'는 논리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기 힘든 논리다. 하지만, 이 논리가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한 켠에서 단단히 자리 잡았다. 그것도 아무나 건드릴 수 없을 정도의 권위와 함께. 그 권위에서는 인간의 냄새만 났다. 신의 향기는 느껴지지 못했다.
저자는 이런 대속 논리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고 오히려 함석헌을 통해 더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힘썼다.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통쾌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통쾌함은 그의 글을 하나 둘씩 읽어가면서 대속의 진정한 의미를 따뜻하게 생각해보는 계기로 변했다. 저자의 글에서는 단순히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고 그 믿음에 기초에 끝까지 참고 인내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외침이 들린다. '오래 참음'은 사랑이다. 예수도 오래 참았다. 그것도 기꺼운 마음으로.
예수의 속성인 대속은 '희생'이다. 희생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는 '나를 따르라'고 했다. 예수의 대속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를 따라야 한다. 다른 말로는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예수를 따를 지 안 따를 지 선택할 자유의지가 있다. 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는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대속이라는 말 대신 자속(自贖)이라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대속과 자속이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그런데 이런 것들보다는 저자의 글을 통해 대속으로 상징되는 예수의 속성인 사랑을 더 느낄 수 있었던게 가장 큰 축복이었다.
<그동안 <함석헌과 한국교회>를 애독해 주셔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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