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원식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 축사…“정치 어떠해야 할지 배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김대중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 선진 혁신국가를 만들다’ 주제의 故김대중(DJ) 전 대통령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가 사단법인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주최로 26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민추협은 양김(김영삼 김대중)이 이끈 범정치결사체다. 80년대 독재의 장막을 거둬내고 직선제 쟁취의 민주화를 이뤄낸 데 있어 최대 공로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행사에서는 3가지가 주목됐다.
우선 정치 후배들을 향한 민추협 원로들의 당부다.
권노갑 민추협 공동이사장은 인사말에서 “김대중 대통령 100년은 우리나라 100년의 역사다. 우리 국민은 백 년 동안 일제강점기 해방과 남북전쟁, 군사독재의 기나긴 토대를 지나오면서 민추협을 통해 6월항쟁 깃발을 들고 광화문에서 봉기를 일으켜 직선제를 얻어냈다”며 “김영삼 대통령이 5년간 운영하고 마침내 김대중 대통령이 큰 업적을 이뤄냈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업적을 통해 민주주와 평화 인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우리는 그 토대 위에서 나라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김영삼 두 대통령의 업적과 능력이 담긴 생생한 국정 노트가 있다. 정치 리더는 청사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절대적으로 실패한다”며 “훌륭한 정치인들의 업적과 능력, 철학을 가지길 바란다. 두 전직 대통령들이 걸어왔던 발자취들을 더듬어가며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김덕룡 민추협 공동이사장은 “민주화운동사에서 민추협에 비견될만한 어떤 정당도 사실상 없지 않은가, 오늘도 생각하게 된다. 신군부에 의해 정치권이 규제에 묶이고 정당이 해산되면서 좌절되고 흩어졌다. 가택연금 중 김영삼 대통령께서는 생명을 걸고 23일간 단식을 했다. 흩어져 있던 야당 인사들이 다시 뭉쳤다. 이대로 되겠는가 각성했다. 광주민주화운동 4주기를 맞아 김영삼 대통령과 미국 망명 중인 김대중 대통령까지 뭉쳐 민추협이 만들어졌다”며 “오늘날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차갑다. 민추협의 원래 출범한 뜻이 훼손되지 않고 전진하는 정치권이 됐으면 하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균환 민추협 공동회장은 “민추협 출신의 두 분(김대중-김영삼)이 대통령이 됐다. 십년 간 연이어 대한민국을 바꿨다.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며 “후배 정치인들이 내일을 위한 역할을 하는 데 의미있을 대단히 중요한 세미나라고 생각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김대중 대통령의 막내 제자 아닌가. 각 당 대표에도 감사하다”고 표했다.
김무성 민추협 공동회장은 “외환위기 누란의 위기 속에서 집권하셨던 김대중 대통령이 불과 4년 만에 나라를 구해준 것에 한없는 존경을 드린다. 정치가 국민을 절망 속에 몰아넣고 있는데 민추협 정신을 배워 정치를 정상화시켜달라는 간절한 마음을 부탁한다”며 특유의 간결한 메시지로 호소했다.
민추협 전임 공동회장이었던 이석현 명예회장은 “여야 정치권이 오셨으니 한 말씀만 당부드 리고 싶다. 남북 관계가 편하질 않다. 일촉즉발의 불안한 상황”이라며 “한반도 평화가 필요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평화를 이뤄낸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본받아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대철 헌정회장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5가지를 했다고 늘 생각했다. 첫째 평화적 정권교체를 처음으로 성공시켰다. 해방 후 50년 동안 우리가 못 이룬 것을 김대중 대통령을 통해 이뤄냈다. 둘째 정적에 대해 자기를 핍박한 사람을 용서하고 보복하지 않았다. 세 번째 우리나라 민주 인권 국가를 만드는데 제도와 법률을 만들었다. 넷째 이 나라 경제 룰인 시장경제, 자본주의에 의한 시장경제를 확립하는데 제도와 법률을 만들었다. 다섯 번째 민주 사회주의적 요소인 경제민주화와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못사는 사람들한테 사회보장 제도를 만드는데 역할을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본인이 국회의원 시절 김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박정희)를 용서하고 기 념사업회를 지어준 것에 감격해하는 모습을 봤다. 우연히 호텔에서 전두환 대통령과도 조우했다. 이 양반이 ‘저는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한다. 내가 죽이려고 그러지 않았소. 그런 나를 국정경험 듣겠다고 네 번이나 초청해 밥을 먹은 적이 있다. 난 놀랐어’라고 했다. 인권법, 양성평등법 등 모두 민주주의를 위해 김대중 대통령이 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두 번째는 정치 후배들의 답사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 앞에서 축사하게 돼 무한한 영광이다. 김무성 회장님의 민추협을 배우라는 말씀에 부끄럽고 죄송하다. 국회의 모습이 너무나 국민들을 어렵고 힘들게 하고 있다. 국회의장으로서 죄송스럽다는 말씀 드린다. 민추협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루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고 정치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시간이었다”며 “저는 88년 재야에서 대거 입당할 때부터 평민당서 일을 했다. 김대중 중산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경제 정책을 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분리해 보지 않고 병행 발전하는 길을 가신 분이었다. 지금 시대가 경제적으로 상당히 벽에 부닥치고 있는데 혁신성장을 하라고 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잘 살려 국회의장으로서 최선을 다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부겸 전 총리는 “민추협 시절 그때의 우리는 참으로 신이 났다. 김영삼 총재(신민당)는 결의에 찬 모습으로 눈 속에 서계시며 무릎에 눈이 쌓일 때까지 입을 악다물고 계셨다. 김대중 대통령의 모습도 생각난다. 그분들이 없었으면 우리들이 누리는 민주주의 가치가 여기까지 왔을까 싶다”며 “김영삼 대통령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말씀드리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일화를 떠올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인사드리러 간 날 어른께서 홍어 한 점을 집어줬다. 처음 먹은 거라 눈물이 핑 돌았다. 당황하고 있는데 ‘김 동지 먹는 것 하나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세상이오. 앞으로 열심히 공부하시오’ 말씀하셨다. 김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오늘날 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시장경제가 안 되고 있다”며 “우리 김대중 김영삼, 김영삼 김대중 두 분 대통령은 아실 거다.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오늘 토론회를 통해 후배들을 혼내시는 게 아닌가 싶다. 여러 선배님들 한 분 한분 주름살 속에 이렇게 숨어진 땀과 눈물과 피해의 역사를 기억한다. 선배님들 고맙습니다”고 인사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당 중대 일정인 의원총회와 겹쳐 서면축사로 대신했다. 민추협 양순석 사무부총장이 대독했다. 한 대표는 “김대중 정부 덕분에 대한민국 경제가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며 “김대중 대통령의 경제 발전에 대한 혜안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부여하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뒤이어 “대한민국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하락하고 있고 국제질서가 요동침에 따라 국제 통상 환경의 불안전성 역시 커진 상황”이라며 “선진 혁신이 필요한 지금, ‘DJ노믹스’를 되돌아봐야 할 이유다. 오늘 학술대회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가르침을 복기하고 현실 경제에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소중한 기회를 만들어 준 민추협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고맙습니다”면서 존경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 산 증인이자 경제위기 극복과 보편적 복지로 선진국의 발판을 마련했다. 정보통신기술 산업의 육성은 대통령의 비전이 담긴 중요한 정책이었다.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는 이유는 결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나 국민을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 대한민국을 번영케 했다”며 “민생경제의 위기, 민주주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를 걱정하셔던 김대중 대통령께서 살아계셨다면 작금의 상황에 어떤 심정이셨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민주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나은 대한민국,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 민생경제와 민주주의, 남북관계의 회복을 위해 모든 힘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조국 혁신당 대표는 “우리나라 정치적 민주화를 이끌었던 대선배님들 앞에서 이렇게 발언의 기회를 갖게 돼 참 영광스럽고 한편으로는 제가 자격이 되는지 의심이 든다. 민추협은 질식하던 민주주의에 작지만 소중한 숨구멍이었다. 김대중 김영삼 두 대통령이 손잡고 만든 민추협은 경쟁과 협력의 정신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제가 청년 시절 김대중 김영삼 두 분은 저의 영웅이었다. 1983년 김영삼 대통령은 개헌과 민주주인 석방 등을 요구하며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그때 오랜 경쟁자였던 김대중 대통령이 나섰다. 미국에 계셨던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을 지지하며 시위를 벌였다. 두 분은 태평양을 넘어 연대하고 협력했다. 두 거인의 협력과 경쟁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기어코 민주주의를 회복했다”며 “오늘날 민주주의 위기라는 말이 나오지만 우리에게는 민주주의를 살려낸 역사가 있다. 민추협의 정신을 통해 김대중 김영삼 두 분 대통령께서 몸소 행했던 경쟁과 협력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물샐 틈 없이 협력을 하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리를 드높였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가운데 한 치의 반론도 없이 국민이 두루 존경하는 대통령을 뽑는다면 역시 김대중 대통령이실 것 같다. 저는 그것이 김 대통령의 뚜렷한 업적 가운데 하나이자 ‘김대중 정신’의 핵심이라고 본다. 김 대통령의 인생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단어는 용기, 헌신, 희생, 그리고 통합이다. 김 대통령께서 통합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고난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보여줬고 또 사심 없이 헌신하는 일관된 원칙을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개혁신당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들기도 한다. 개혁신당이 배우고 싶은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는 아시다시피 젊은 정당이다. 막 시작하는 병아리 정당이다. 민추협이 흔들림 없이 한 길을 꿋꿋이 걸어와서 존경받는 오늘이 있는 것처럼 저희도 용기 있게 한 길을 가려고 한다. 민추협에도 시작이 있었을 것이다. 시작하는 저희 병아리 정당을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전병헌 새민주당(새미래민주당) 대표는 “저는 김대중 재단 식구이기 때문에 이렇게 나와 인사드리는 것 자체가 매우 귀중한 기회이고 무한한 영광이다. 2015년 민주당의 역사성이 소멸돼가는 위기감을 느끼고 당의 정체성을 찾아야 되는데 어떻게 찾을까 고민을 했다. ‘민주당의 역사성은 김대중이다’ 이렇게 판단을 하고 당의 근원을 찾았다. 민주당의 근원은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김대중 선생이 1995년 9월 17일 창당해 입당한 정당을 민주당의 기원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민주당 창당 60주년 기념사업회 위원장을 맡아 민주당 당명 개정 작업을 추진했다. 공모사업을 했는데 결과는 소나무당이 1등, 2등이 더불어민주당, 그 다음이 더민주당이었다. 손혜원 당시 홍보위원장이 소나무당으로 하자는 것을 제가 당시 최고위원이자 민주당 창당 기념사업회 위원장으로 더불어민주당 약칭은 더민주당, 그렇게 결정을 해서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이 확정돼 지금까지 당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런데 민주당은 역사상 가장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임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다양성이 상실되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 민주적 정신의 위기다. 이렇게 생각해 민주당의 정통성을 누군가는 어떤 정당은 계승 보존 발전시켜야 되겠다는 역사적 사명감과 책무 감으로 새로운 미래를 새미래 민주당으로 약칭 새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했다”고 전했다.
세 번째는 학계에서 보는 DJ 업적 부분이다.
김성재 김대중 평화센터 상임이사 겸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 이사장은 특강에서 “대학생 때 가담했던 삼선개헌 반대 투쟁 집회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뵙게 됐다. 71년 대선 때부터 서거하신 2009년 8월까지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며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된 후에 직무 책상 앞에 정치철학, 정치신조 등 15가지를 적어놓고 그것을 숙지하면서 국정을 수행했다. 계획에서부터 결과까지 모든 것을 꼼꼼하게 메모하고 기록하는 특정 노트를 5년 동안 27번 기록을 남겼다”고 회상했다. 김 이사장은 “대통령께서는 국민의정부 3대지표로 민주주의 민주적 시장경제 생산적 복지를 말씀하셨다. 여기서 오해가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를 했다고 많은 비판을 했는데 학 신자유주의를 한 게 아니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병행 발전하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한 것”이라며 “그 전까지는 개발 독재에 의해 기반이 됐던 투자 경제를 세계 단일 자본주의 시장경제 환경에 맞게 차관 경제를 투자 경제로 전환시켜 한국 사회와 경제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대개혁을 했던 것이었다. 5대 국정과제를 통해 정부가 얼마나 투명하게 국민을 참여시켜 함께 국정을 수행하는 가를 알게 하고, 공직자들이 국민의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국민에 봉사할 것인가를 숙지하면서 능동적으로 일을 했다”고 역설했다.
이진순 숭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새로운 경제패러다임을 개편함으로써 3만 불이 넘어서는 선진국 시대를 여는데 큰 역할을 해준 분이다. IMF는 박정희 대통령 패러다임이 한계에 봉착해 우리가 위기를 맞이했던 것인데 이를 극복하고자 창조적 성장이론의 새로운 경제성장의 이론을 발전시켜 개혁한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 굉장히 조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박정희 정권은 관치 경제를 통해 만불 소득을 달성했지만 혁신성장으로 나가지 못해 결국 1997년 국가 부도에 빠지게 됐다. 다만 박정희식 관치 경제가 일부 상당히 중요한 기능을 했고 성과도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한계에 봉착했을 때 혁신성장 주도로 넘어가지 못하면 결국 실패하고 만다. 김대중 대통령은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이런 충격적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성공적인 대표적 지도자 사례”라고 극찬했다.
황태연 동국대 명예교수는 “저는 민주화, 선진화와 관련해서 주목하는 것은 YS와 DJ가 연속적으로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이다. YS는 경제적으로 실패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뤘다. 일단 하나회를 해체시킴으로써 문민 집권의 길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또, 성공한 쿠데타를 처벌했다. 그 이후 세계적으로도 군사 쿠데타가 없어졌다. 위대한 세계사적 업적이라고 생각하고 그 토대 위에서 DJ가 YS의 실패한 경제를 살려냈다. 다른 정권이 들어왔다면 살려내기 상당히 힘들었을 것이다. 경제가 무너지고 나서 DJ가 집권함으로써 창조적인 파괴로 활용할 수 있었다”며 “그런데 나는 이진순 교수의 국민 1인당 소득 1만 달러는 박정희 덕분이라고 한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박정희로 인해 경제적 발전이 일부 있다고 보는 것은 그로 인해 파괴된, 이른바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는 전후 복구 시기라서 말뚝만 박아도 성장으로 통계가 잡히는 그런 시기였다. 박정희가 아니더라도 성장률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박정희가 아니라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웠던 장면 민주정부 등에서 계속 추진했다면 재벌 경제, 관치 경제가 아닌 더 좋은 경제구조로 발전했을 것”이라고 확언했다.
유종성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은 자료집 83페이지를 봐달라는 전제로 “불평등 소득 등이 전체 국민소득의 50% 넘게 차지하고 있는 나라들, 주로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지역인데 모두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나라다. 반대로 유럽과 호주, 뉴질랜드 이런 나라들이 제일 평등한 소득분배를 보이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들이 소득 불평등이 가장 낮다”며 “부의 불평등 또한 마찬가지다. 제일 상위층에 집중이 많이 된 불평등 폭이 가장 큰 나라들은 남미와 중동, 아프리카, 러시아와 중아시아 순서로 나오고 있다. 반대로 불평등이 제일 낮은 곳은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라고 열거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경제사회 발전과 민주주의 상호 보완 조건이 어떻게 되느냐를 보면, 이진순 교수께서는 박정희에 절반 정도의 공이 있고, 황태연 교수는 인정할 수 없다고 했는데 저는 절반의 절반 정도는 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1960년경 개발도상국들의 토지 소유 불평등 수준을 볼 때 우리 한국은 대만, 핀란드 같은 나라들처럼 가장 불평등이 낮은 나라에 속했다”며 “그 이유는 (이승만 정부때의) 농지 개혁이 있기 때문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완화가 되고, 민주적 교육이 급속도로 강타하게 됐다. 그래서 박정희가 집권했을 때 문해력과 수해력을 겸비한 값싼 노동량이 대량으로 공급돼 수출주도형 산업화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며 ”그런 토대 위에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적 시장경제가 병행적으로 발전했다.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질서도 세계일등이다. 자유지수가 미국과 83점 동점”아라고 호평했다.
이번은 지난 6월에 이어 2차로 열렸으며 오는 10월 3차 세미나가 개최될 예정이다. 행사는 민추협에서 주최하고 김영호 권영세 의원이 공동주관하고. 김대중재단, 김영삼민주센터에서 후원했다. 조찬옥 민추협 사무총장이 사회를 맡았다. 김부겸 전 총리, 전병헌 대표는 3시 가까이 되는 행사 내내 끝까지 자리를 지켜 훈훈함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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