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강상호 시사평론가)
신뢰프로세스와 통일 대박론으로 남북관계의 새 장을 열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 철수를 단행함으로써 남북관계는 파국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당국 간 공식채널은 물론 민간 비공식 접촉도 전면 단절된 상황에서 3월 7일 시작되는 한미 합동 키리졸브 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로 유사시 북핵과 미사일 기지를 선제 타격하는 ‘작전계획 5015’를 처음 적용하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남북한이 이상 징후 감지 시 선제공격과 원점 타격을 하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참수작전과 평양사수 훈련 내용이 전파를 타는 비상상황이다. 베이징대 진징이 교수는 한반도를 동방의 발칸반도로 비유하고,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가 지금 한반도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물론 정치권도 총선정국의 혼돈 속에서 최근 남북 간 조성되고 있는 긴장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긴장은 금년 1월 6일 북한이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4차 핵실험을 하고, 2월 7일 광명성 4호를 발사함으로써 시작되었고, 청와대가 전격적으로 개성공단 철수를 결정함으로써 최고조에 이르렀다. 무디스를 비롯한 신용평가 기관이 북한의 4차 핵실험보다 개성공단 철수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개성공단 철수가 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이루어지지 않았나 하는 우려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철수와 관련하여 정부에서는 개성공단에서 지급되는 연간 1억 달러의 인건비, 토지 임대료 그리고 각종 세금 등 현금 지급을 차단함으로써 지급된 외화가 핵실험이나 미사일 개발에 사용되는 것을 막고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를 요구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개성공단 철수 후 진행되는 상황을 보면, 지급된 외화의 핵무기 개발 전용을 이유로 철수한다는 것은 개성공단 파견 근로자들의 안전철수를 위한 위장전술처럼 보인다.
2000년 8월 김대중 정부가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을 시작할 때부터 여러 가지 비정상적인 상황을 검토하지 않았을까? 그중에는 어떤 이유로든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고 개성공단 파견 근로자들이 인질이 될 수 있는 경우도 검토했으리라 본다. 긴급 상황이 발생해서 파견 근로자들을 철수시킨다는 것은 파견 근로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철수 결정은 타이밍이 중요하며, 파견 근로자 철수는 이상 징후가 조성되는 초기 단계에서 신속히 이뤄져야 한다. 이는 고도의 정보를 요하며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철수는 각자 취득한 정보의 수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문제는 안보에 관련된 국가정보의 공개가 예기치 못한 긴장을 야기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정보 공개를 통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의회의 동의 절차를 사전적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사후적으로도 일정 기간 정보를 공개할 수 없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이번 개성공단 철수의 경우,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심화된 북한 내부의 갈등과 사후적으로 확인된 북한 관련 보도 내용만 가지고도 파견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문제를 고려할 단계였다고 생각된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후 숙청과 처형을 반복하고, 3차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한국은 물론 미국을 위협함으로써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처럼 국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정권이 되었다. 레짐 체인지 없이는 정상적인 국가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근혜 정권은 개성공단의 철수 시기와 명분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이라면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개성공단 철수를 검토했을 것으로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박근혜 대통령의 개성공단 철수 결정을 현시점에서 비난만 할 수 없다.
최근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하여 포용정책도 압박정책도 실패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는 안보딜레마의 관점에서 북한이 체제 변동이 없는 한 핵을 포기하기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북한이 핵개발 고도화를 지속하는 상황에서 김정은의 리더십과 지도부의 통제능력에 이상이 발생하면 중차대한 상황이고 남북관계는 그때마다 출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고도화에 따른 단계별 대응전략이 필요한데, 최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가 언급한 조건부 핵무장론도 대응전략의 하나가 될 수 있다. 당장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남북 간 긴장이 조성될 때마다 한국의 핵무장 당위성을 반복 주장함으로써 주변국들에게 한국이 언젠가는 핵무장할 것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어느 시점에서 핵무장을 해야 할 때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에서 포용과 압박은 다 필요하다. 김정은의 공포정치가 북한 내부에 그치지 않고 남북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동아시아 지역에 군사적 갈등과 긴장을 조성하는 상황에서 어떤 정책이 필요한가는 명확하다. 남북관계의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국면에서 김정은 정권을 압박하고 통일을 향한 우리의 목표와 의지를 공고히 할 때다.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
- 정치학 박사
-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 행정자치부 중앙 자문위원
- 경희 대학교 객원교수
- 고려 대학교 연구교수
-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