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전승절’에 생각나는 ‘사르트르’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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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전승절’에 생각나는 ‘사르트르’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7.2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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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중·러 대표 초청해 대규모 행사”
“북침, 抗美援朝戰爭 왜곡 주장 여전”
“70년 전 북침 주장했던 사르트르 연상돼” 
“결국은 파문된 그 사람, 세기의 허위 지성”
“우리 부산 행사엔 6.25 산증인 각국 노병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북한이 '전승절'(6ㆍ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인 지난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북한이 '전승절'(6·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인 지난 27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8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지난 27일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정전 70주년(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기념식이 열렸다. 90세가 넘은 각국의 참전용사들이 속속 부산으로 들어왔다. 북한의 남침으로부터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달려온 자유진영의 고마운 분들이다. 이들은 방송 인터뷰에서 울먹이기도 하며 한국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을 내보였다. 

행사 전에 단체 사진을 찍던 어느 노병이 감회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역사!”
역사. 그분들이야말로 6·25 전쟁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북한은 7월 27일을 ‘조국해방전쟁 전승기념일(전승절)’이라고 한다. 올해에도 대규모 열병식을 가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리홍중 중국 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접견하고 ‘무기 쇼’까지 벌였다.

그러나 아무리 요란을 떨어도 그 행사는 초라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놓고 절절매는 러시아, 미국과의 갈등 국면에서 벗어나려고 초조해하는 중국, 유엔 제재에서 풀려나지 못하는 북한. 그들이 아무리 허풍 떨며 단결과 세를 과시해도 초라해 보이는 이유다.   

북한은 70년이 지나도록 남한의 ‘북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에서 자신들이 이겼다고 떠벌린다. 중국은 자신들의 동의하에 전쟁을 일으킨 북한 책임은 쏙 빼버린 채 전쟁에 개입한 미국을 저지하기 위해 자신들도 전쟁에 개입했다며 6·25 전쟁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이라고 왜곡해 부르고 있다. 

공산주의 원조국인 구소련이 진작에 북한 남침 사실을 인정했고, 국제공산당이 기승을 부리던 프랑스 등 유럽에서도 뒤늦게 남침 사실을 인정한 지가 언제 적 얘기인데…! 이 동아시아 지역의 계속되는 억지와 무지는 차라리 우리에게 자괴감을 들게 할 정도다. 국제공산당이 기승을 떨던 70년 전 유럽 지역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공산주의자 ‘사르트르’의 몰락 과정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전쟁을 두고 소련을 중심으로 한 국제공산당 조직은 즉각 가짜뉴스 생산과 유포에 나섰다. “남측의 북침으로 전쟁이 시작됐다.(후에 북한의 남침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밝혀지자 ‘미국 유도로 전쟁이 시작됐다’고 전략을 수정한다)”

유럽의 많은 국가가 유엔군에 참여해 한반도에 파병했지만, 공산주의에 경도돼 있던 ‘장 폴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유럽 지식사회는 미국을 악으로, 소련을 정의로 간주하며 북한 쪽에 힘을 실어준다. 당시 영향력이 막강했던 사르트르를 중심으로 한 이들의 선전·선동으로 인해 유럽 사회는 이후 수십 년 동안 ‘북침’이라는 오류 속에 갇혀 살게 된다. 

종군기자로 왔던 사르트르의 고등사범 동기 레이몽 아롱 등 극히 일부 지식인들이 북한의 남침 사실을 확인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레이몽 아롱은 ‘르 피가로’ 지에 북한의 남침이라는 종군 기사를 실었었다. 그러나 사르트르 일파 세력에 밀려 레이몽 아롱의 진실 보도는 힘을 잃었다. 좌파 세상이 된 프랑스에서 사르트르는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도 ‘진보적 폭력’으로 옹호하는가 하면 이후 북한의 남침 사실이 밝혀지자 “북한이 남침하도록 미국이 함정을 팠다”고 억지 주장을 이어갔다. 그런 사람이 한참 프랑스의 최고 지성 대우를 받았다!

사상가로, 작가로 명성을 얻으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던 사르트르는 6·25 진상이 세계에서 공식적으로 확인되기 전인 196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까지 선정된다. 그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수상을 거부했다. 필자는 그것이 한국에 막대한 피해를 준 그의 ‘업적’ 중 그나마 잘했던 일로 평가한다. 노벨상의 권위를 그나마 지켜준 결과가 됐다.

한국에 대해 빚진 마음이 있었기 때문일까. 1974년 시인 김지하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게 됐을 때 사르트르도 석방 호소문에 서명을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1980년 사망할 때까지 스탈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북침 사실’에 대해서도 끝내 명쾌한 사과 없이 “멀리서 불 난 집 쳐다본 탓”이라며 명성에 걸맞지 않은 ‘허접한 말’로 얼렁뚱땅 넘겼다.

그를 ‘숭배하던’ 프랑스 지식사회는 결국 그의 사후에 그를 ‘파문’하기에 이른다. 사르트르가 창간했던 신문 ‘리베라시옹’이 ​2017년 7월 2일 자에 “슬프다!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싣는다. 

거의 70년이 지난 후의 사과이며 사르트르의 오류를 뒤늦게나마 대신 자백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유럽인들은 한국의 북침으로 인해 6.25전쟁이 터졌던 것으로 알고 있을 것이다.                             

세뇌 공작의 무서움, 무책임한 지식인이 저지르는 중범죄!

6‧25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했던 레이몽 아롱은 좌파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당시 ‘부르주아 좌파’를 비판하는 글을 여러차례 썼다고 한다. 입으로는 프롤레타리아를 위하면서 자신은 귀족적인 삶을 즐기는 사르트르가 아롱의 눈에 매우 위선적으로 비쳤음 직하다. 

최소한의 팩트 확인조차 소홀히 한 채 공산당 조직의 거짓 선동에 놀아난, 아니 앞장서서 거짓을 전파한 사르트르 등 당시의 유명 공산당원들. 대사상가이며 ‘르 피가로’의 명칼럼니스트였던 레이몽 아롱의 기준으로 그들은 지성인은 커녕 함량 미달 군상들로 채점됐을 거다. 

먼 나라의 존경 받는, 아니 존경받던 사상가 사르트르를 감히 평가절하한 이유는 언행이 일치하지 못했던 유럽의 대표적인 공산주의자였을 뿐만 아니라 한국민에게는 오랫동안 막대한 피해를 안기고 간 무책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강남좌파 행태가 그와 어찌나 그리 닮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6·25가 ‘1950 미중 전쟁’이라고?

그러나 6·25 전쟁에 대한 왜곡 내지 ‘진상 흐리기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6월 25일 페이스북에서 ‘6·25는 미·중 패권을 위한 국제전’이라고 주장하는 ‘1950 미중 전쟁’이란 책을 추천했다. 문 전 대통령은 해당 게시물에서 “한국전쟁이 국제전이었음을 보여준다”며 “전쟁의 시원부터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인 힘이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 보여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에 작용한 국제적인 힘이 바로 대한민국의 숙명 같은 지정학적 조건”이라며 “이 지정학적 조건을 우리에게 유리하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국가 안보 전략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희석 대변인은 “대한민국의 한 전직 대통령이 6·25가 북한의 침략전쟁이었음을 부인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라고 지적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여당 간사인 신원식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문 전 대통령의 글에 6·25 전쟁의 원인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북한을 감싸려는 의도 외에는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라며 “6·25 전쟁 대신 ‘한국전쟁’으로 표현한 저의가 뭔가”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지적에 동의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6·25 전쟁을 미국과 중국 등이 개입한 국제전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공산권의 ‘프로파간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그 과오를 부인할 수 없으니, 이것을 시각을 바꿔서 미국을 갈등의 시발로 놓고 ‘미국에 항거한 전쟁이다’라는 이미지로 공산권에서 프로파간다로 써먹는 것”이라며 “보편화돼서는 안 되는 시각이자 용어”라고 비판했다. 이 전 대표의 주장에도 동의한다. 

간략하게 덧붙이자면, ‘미·중 전쟁’ 주장은 ‘북한 남침’ 사실의 초점을 흐리기 위한 작업이다. 

‘Live and let live’(각자 방식대로 살자)

북한의 억지 주장이야 이제 ‘그러려니’ 하자. 입으로만 대중의 편에 섰고, 기본 팩트 확인조차 소홀히 해 한국민을 공산주의 확산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은 사르트르도 이제 영향력이 거의 소멸한 사람이니 그렇다 치자. 

당사자인 대한민국에서 그 짓을 본받아 하는 이들은 도대체 정체가 어떤 이들인가? 국제공산당이 극성을 부리던 유럽 지역에서 6.25의 남침 사실을 공식 확인한 게 언제 적 일인데 당사국에서 아직도 엉뚱한 소리와 역사를 왜곡하는 요설들이 난무하는가? 

육군사관학교 입시생 상당수가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 헷갈렸다는 기막힌 보도도 있었다. 간첩단과 종북주의자들이 집요한 작업으로 성과를 올린 결과물 중의 하나일 것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1985년 3월 구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취임한 후 페레스트로이카(재편, 재건) 정책을 실시했다. 이 개혁은 글라스노스트(개방) 정책과 함께 소련 정치 경제 분야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민주화,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 등 자유진영을 참고한 점이 주요 결과물이었다. 이 과정에서 물론 서방의 개입은 전혀 없었다. 

‘죽의 장막’으로 불리던 중국이 ‘철의 장막’ 소련과 함께 개방을 시작한 것도 1980년대였다. 등소평이 사회주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는 가운데에서도 과감하게 개방정책을 펴고 시장경제를 도입, 경제대국으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다. 시장경제 도입을 위해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연구를 열심히 했다고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도 물론 자유진영의 개입은 전혀 없었다. 북한이 전승절에 초대한 두 나라다. 그나마 북한이 벤치 마킹 좀 했으면 좋을 나라들이다.  

몇 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 말씀 중 인상 깊었던 내용 하나. 
‘타인을 개종하려 들지 말라’
고대 로마 시대 이래 서구 지역에 전해 오는 경구 하나.
‘Live and let live(너대로 살고, 그들은 그들 방식대로 살게 내버려 둬라.)’

”종북파들과 김정은 추종자들아, 너희들대로 살아라. 난 70여 년간 몸에 익혀온 이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나대로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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