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역사 전쟁…핵심은 반공주의 vs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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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되는 역사 전쟁…핵심은 반공주의 vs 민족주의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8.28 20: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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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영웅 고평가하는 반공주의 vs 독립운동가 높이는 민족주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으로 정치권이 뜨겁다. ⓒ연합뉴스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으로 정치권이 뜨겁다. ⓒ연합뉴스

때 아닌 ‘역사 논쟁’이 정치권을 뒤덮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 철회를 요구한 게 발단이었다. 박 장관은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율성은 1939년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현재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인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한 장본인”이라며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자유대한민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앞장섰던 사람을 국민 세금으로 기념하려 하는 광주시의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한다”고 썼다.

이러자 강기정 광주시장은 같은 날 페이스북에 ‘광주는 정율성 역사공원에 투자합니다’라는 글을 올려 “정 선생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중우호에 기여한 인물로 김구 선생과 함께 꼽았다”며 “나와 다른 모두에게 등을 돌리는 ‘적대 정치’는 이제 그만하고 다른 것, 다양한 것, 새로운 것을 반기는 ‘우정의 정치’를 시작하자”고 반박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사업에 대한 설왕설래(說往說來)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체제’가 우선인 반공주의자


표면적으로, 정율성 역사공원이 논란에 휩싸인 건 그의 행적 때문이다. 광주 출신인 그는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 항일(抗日)운동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6·25 전쟁 당시에는 중국 인민군을 위한 전선 위문 활동을 펼쳤고, 중국 인민해방군가와 북한 조선인민군 행진곡을 작곡하는 등 대한민국에 적대적 행보를 보였다. 항일운동가면서 동시에 ‘대한민국의 적’이라는 양면성이 논란의 원인인 셈이다.

그러나 그 기저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다. 반공(反共)을 최우선 가치로 생각하는 반공주의자들은 ‘체제’의 프레임으로 역사를 본다. 때문에 항일운동보다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수립을 우위에 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國父)’로 추켜세우는 것, 친일(親日) 인사라 하더라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한 인사들은 우호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건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박민식 장관의 기념사업 철회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 장관은 “정율성은 대한민국을 위해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다”라며 “북한에서 6·25 전쟁 남침의 나팔을 불었던 공산군 응원 대장은 당연히 독립유공자로 인정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이냐”는 말에서도 대한민국에 적대행위를 했다면 항일운동의 공(功)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드러난다.

최근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하고 대신 백선엽 장군 흉상 설치를 추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를 이끈 ‘독립운동의 전설’ 같은 인물이지만,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 전력이 있다. 반면 백선엽은 일제강점기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 특설대에 근무한 경력이 있으나 6·25 전쟁 당시에는 주요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전쟁 영웅’이다. 역사 해석의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민족’ 우선하는 민족주의자


이와 달리 민족주의자들은 ‘민족’이라는 프레임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민족주의자들에게 체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들에겐 ‘우리 민족’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6·25 전쟁에서 어떤 편에 섰든, 항일운동가라면 마땅히 기려야 한다는 주장은 여기서 기인한다. 독립운동은 ‘국가를 위한 항전(抗戰)’이지만, 6·25 전쟁은 민족 내부의 이념 갈등에 따른 내전(內戰)인 까닭이다.

강기정 시장이 “(정율성은) 항일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건너가 항일운동가 겸 음악가로 활동하다 중국인으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라며 “그 아픔을 감싸고 극복해야 광주건, 대한민국이건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다”고 한 건 이런 이유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사관 역시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하게 드러났다. 문 전 대통령은 2019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광복군에)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결집했다”며 “광복군 대원들의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됐다”고 김원봉 선생의 독립운동 공(功)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김원봉은 광복군 부사령관을 지낸 대표적 독립운동가지만, 해방 후 월북해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했고 6·25 전쟁에서의 공훈을 인정받아 로력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백선엽 장군 타계 당시 직접 조문하지 않고 조화만을 보내 논란을 낳았다. 문 전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당시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은 “6·25 전쟁의 백척간두에 서 있던 나라를 구출하는 데 혁혁한 공로를 세우신 분”이라며 “백선엽 대장의 장지를 놓고 정치권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걸 보고 과연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나라인가 생각하게 된다”고 비판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따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역사 해석은 학계의 몫’ 지적


계속되는 정치권의 역사 논쟁에 학계에서는 정치가 역사 해석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한 잣대로 역사를 들여다봄으로써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는 이유에서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이진한 교수는 “역사가 진영의 입맛에 따라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게 반복되면 사회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경남지역 한 역사학과 교수도 “문재인 정부에서 김원봉 재평가를 하는 것이나 윤석열 정부에서 백선엽 재평가를 하는 것은 모두 비슷한 맥락”이라며 “정치가 어떤 의도를 갖고 역사 해석에 끼어들면 실익 없는 논쟁만 벌어진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역시 “역사 속의 인물들을 평가함에 있어서 친일과 좌익의 역사적 사실은 정확하게 사실대로 기록하며 그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봐야 한다”면서 “친일매국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눈감고 종북좌익에 대해서는 일제시대의 이력까지 끄집어내어 매도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이념편향이고 이념과잉”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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