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 뿌려 석쇠로 숯불 화로에 구워낸 그 맛 못 잊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바야흐로 베란다 창문에 가을이 매달렸다. 이제 여름의 폭정에서 벗어난 것이다. 점령군이던 매미소리 잦아들고 귀뚜라미 저 멀리서 떼 지어 진군하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일본 오염수, 유죄인가 무죄인가
이렇듯 자연은 평정심을 찾아가건만 인간사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요즘 대표적으로 국내외에선 일본 후쿠시마 오염 방류수 건으로 시끄럽다. 먹거리 비중이 큰 수산물과 연관이 깊다 보니 공방이 치열할 수밖에.
대부분 가정의 밥상엔 바다가 올라온다. 그 바다에 오염수라... 검사상 안전하다는 입장과 국민의 건강과 미래 세대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까지, 뭐가 진실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시장 구경은 최고의 즐거움
흘러가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던 중 어린 시절 먹거리가 떠오른다. 그때는 무공해 그 자체였으니 오염 같은 이슈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내 고향 하동은 남해와 가까워 시장에 나가면 신선한 수산물이 장사진을 친다. 특히 오일장은 대단한 구경거리로 읍내가 들썩거릴 정도였다. 이에 할머니 엄마 따라 장 구경 가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더군다나 우리 집 담장 옆이 바로 중앙시장이어서 장날 소란스러운 풍경이 집 마당에까지 전해졌다. 북적거리는 소음마저도 흥겨웠다.
갈치와 서대, 베다구, 전어 등 생선뿐 아니라 해삼 멍게와 대합, 개불까지 계절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과 해물이 어물전에 푸짐하게 진열됐다.
고소한 그 냄새, 할머니 밥상
그렇다보니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는 예전 청정 지역에서 걷어올린 재료로 만든 밥상은 무척이나 신선했고 먹음직스러웠다. 게다가 무엇보다 푸짐하고 맛깔났던 할머니 밥상, 아직도 기억이 선명하다.
엄마 부재 시 할머니께서 수시로 내 끼니를 챙기셨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할머니와 같이 먹은 가장 기억나는 밥상이 갈치구이 백반이다. 아버지랑 겸상을 할 때는 커다란 대합 등 찬이 더 넉넉했으나 나와 할머니 식단에서 주인공은 단연 갈치였다.
그 시절, 렌지가 아닌 숯불을 피운 화로에 굵은 소금을 뿌린 갈치를 석쇠에 노릇노릇하게 구워 밥상에 올린 갈치구이는 고소함을 넘어 달달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난 잔뼈가 많은 전어구이는 못먹어 대신 할머니는 갈치구이를 종종 밥상에 올렸다. 가운데 굵은 토막은 내가 먼저, 할머니는 나머지 부분을 드셨다. 철없던 그 시절….
가을 전어는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맛난데, 그 못지않게 노릇노릇 구운 가을 갈치 역시 밥도둑으로 맛은 가히 일품이다. 지금은 아무리 맛있게 구워보려 해도 옛날 할머니 밥상에서 먹은 그 맛이 나지 않아 안타깝다.
갈치, 조림부터 젓갈까지 다양한 변신
생선 이름에는 독특한 게 많다. 갈치는 이름이 칼처럼 생긴 모습 때문에 '갈치'가 됐다는 설이 있다. 검어(劍魚) 또는 도어(刀魚), 허리띠 같아서 대어(帶魚), 칡넝쿨처럼 길어서 갈치(葛侈)라고도 불렀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모양이 긴 칼과 같다. 입에는 단단한 이가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물리면 독이 있다. 맛이 달다'라고 갈치를 묘사하여 기록되어 있다.
갈치는 고단백 저지방 식품으로 필수아미노산이 많고 비타민인 레티놀 A 효능이 높은 식품이다. 갈치구이, 갈치 국, 갈치조림, 갈치 젓갈 등등 다양한 요리가 가능하다.
갈치가 예전에는 서민 생선이었을 정도로 흔한 어종이었으나 어획량이 줄면서 이젠 귀한 몸이 됐다. 40년 새 절반도 안 되게 줄어든 갈치 어획량으로 국산 구경하기가 싶지 않다.
자연히 수입품이 많아졌는데 국내로 유입되는 수입 갈치와의 가장 큰 차이는 눈동자다. 눈이 검은자 주변이 흰색을 띠면 국내산 갈치, 노란빛을 띄면 외국산 갈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일본산의 경우 눈 흰 자가 국내산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갈치가 연중 잡히지만 10월에서 12월 사이에 잡은 가을 갈치의 맛이 가장 뛰어나다. 수온이 내려가면 월동 준비를 위해 먹이를 충분히 섭취해 살이 도톰해지고 기름이 오르기 때문이다.
한 끼의 사랑
주부들은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준비하고 차려서 한 끼의 밥상엔 사랑과 정성이 가득차다. 할머니와 엄마가 그랬듯이 나 역시 내 아이들과 이젠 손주들에게 까지 받은 사랑을 전수하려 한다.
손자들은 아직 어려서인지 생선구이나 전통 밥상은 낯설어 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식탁 문화도 즐겨 찾는 최애 식품도 변모하니, 옛것을 고집할 수 도 없다. 아쉽지만 크면 나아지겠지하며 기다린다.
피자나 치킨, 햄버거보다 언젠가는 전통 한식 먹거리를 즐기기를 바라며 종종 만나는 손주들에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음식을 먹이려 애쓴다. 그게 나 나름의 사랑 표현이고 교육이라 여긴다.
여름이 떠날 채비를 하고 가을이 문 두드리는 이 계절, 갈치 한 토막 노릇노릇하게 구워야겠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