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파탄과 ‘노란봉투법’ [이병도의 時代架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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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파탄과 ‘노란봉투법’ [이병도의 時代架橋]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3.11.04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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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파산신청 역대 최고
초격차 기술로 저성장 늪 벗어나야
“노란봉투법은 경제파탄 지름길” 경영계 절규
임금격차 최대, 노동개혁 속도 내야
기업회생법 재입법 서둘러야
진흙탕 정쟁 멈추고 경제 살리기 경쟁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코스피와 코스닥이 10월 31일 크게 하락하면서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32.56포인트(1.41%) 하락한 2277.99로 집계됐다.ⓒ연합뉴스
코스피와 코스닥이 10월 31일 크게 하락하면서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이날 코스피 종가는 전장보다 32.56포인트(1.41%) 하락한 2277.99로 집계됐다.ⓒ연합뉴스

한국은행이 발표한 기업경영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내지 못하는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42.3%로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였다. 여건이 어려워 빚을 냈지만 경기가 살아나지 않아 이익을 내지 못하면서 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기업 상황이 지난해에 그친 게 아니라 갈수록 악화일로라는 점이다.

경영 위기에 처한 기업이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올해 9월까지 법원에 접수된 법인 파산 신청 건수가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넘어섰다. 경기 침체에 고금리 상황까지 지속되면서 생긴 결과로 분석된다. 경제 불확실성이 계속돼 파산 신청을 하는 법인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법원통계월보에 따르면,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법인은 9월까지 1213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4% 늘어난 수치다. 최근 10년간 파산 건수가 가장 많았던 2021년 1069건이었는데, 연말까지 3개월을 앞둔 시점에 이를 훌쩍 넘어선 것이다. 하루에 4.5개 기업이 파산 신청을 한 셈이다.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기업이 속출한 것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130조 원에 달하는 부동산업체들의 실태는 우리 경제의 뇌관이다. 그동안 가계부채 심각성에만 눈을 돌린 사이에 기업 부실이 위험수위에 다다랐다고 봐야 한다.

기업의 회복 여부는 대내외 경제환경, 금융 여건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다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 확산으로 소비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고 원자재 가격이 꿈틀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 정부는 고금리와 경기 침체 지속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기업 구조조정과 생산성 향상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파산신청 대부분이 중소기업

은행권에서 자금 대출 뒤 만기일이 도래했지만 상환하지 못해 파산 신청한 법인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이는 건실한 중견기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코로나19는 끝났지만 이후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의 급격한 상승, 심각한 경기 침체와 고금리 등 악재가 겹치면서 많은 기업이 버텨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은 2013년(3.5%) 이후 2024년까지 12년간 내리막이다. 반면 최근 수년 동안 미국·캐나다·이탈리아·영국 등은 잠재성장률이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어 조만간 한국이 다른 G7 국가들에도 역전당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일본식 저성장 장기화의 늪에 빠지고 있다는 징후다.

정부는 최근 잠재성장률 하락의 원인을 저출산·고령화 등 인구구조 변화나 대외 여건 악화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한국만 거꾸로 가는 것은 정부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제라도 안일한 인식에서 벗어나 초격차 기술 개발을 위해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구조 개혁과 속도감 있는 규제 혁파로 민간의 혁신과 기업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초격차 기술을 개발하고 고급 인재를 육성할 수 있다. 특히 꺼져가는 성장 엔진을 되살리려면 반도체·디스플레이, 2차전지, 차세대 원자력, 인공지능(AI), 첨단 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 육성을 위해 세제·금융 등 전방위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기업은 과감한 투자로 화답하는 것이 한국이 저성장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다.

잃는 것이 훨씬 많을 법안

더불어민주당이 내달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조합과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을 일컫는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 업체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노란봉투법은 얻는 것에 비해 잃는 것이 훨씬 많을 게 뻔한 법안이다. 무엇보다 불법 파업을 조장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불법 파업이 기승을 부려 일상화된다면 산업 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또 다른 대형 악재가 닥쳐오는 것이다. 오죽하면 경제 6단체가 입장문을 통해 “노란봉투법이 통과돼 원청 기업들을 상대로 끊임없이 쟁의행위가 발생한다면 원·하청 간 산업 생태계는 붕괴할 것”이라고 우려했겠나.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점유하고 있는 만큼 국민의힘이 저지하더라도 노란봉투법이 처리될 개연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기다리고 있다. 결국 거부권 행사로 제지될 노란봉투법을 처리하려는 민주당의 속셈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경제가 어떻게 되든 말든 내년 총선에 대비해 노란봉투법 처리로 노조 지지를 끌어올리겠다는 속셈이 다분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만들어 부담을 지우겠다는 의도도 없지 않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바닥을 헤매고 고물가, 고금리에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 등 대내외 악재가 쏟아지고 있다. 이 와중에 기업과 경제에 충격을 줄 게 뻔한 노란봉투법 처리는 재앙을 키우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각계의 우려대로 파업이 기승을 부려 일상화된다면 산업현장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또 다른 대형 악재가 생기는 것이다.

힘든 경제 현실을 고려한다면 노란봉투법은 경영계의 말대로 기업과 경제를 파탄낼 수 있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1.0%로 전망할 정도로 우리 경제는 불확실성 투성이다. 게다가 중동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까지 터졌다. 이런 와중에 노란봉투법은 재앙을 키우는 행위나 다름없다. 노란봉투법 입법 강행을 멈추라는 경영계의 절규를 귀 활짝 열고 들어야 할 때다. 그 절규가 심상치 않으니 전면 폐기가 정답이다. 사회적 혼란과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폐기는 마땅하다.

‘좀비기업’ 비중 42.3%로 역대 최고치

번 돈으로 이자도 못 갚는 이른바 '좀비기업' 비중이 42.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25일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2022년 연간 기업경영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대상은 국내 비금융 영리법인기업 91만206곳이다. 더 큰 문제는 좀비기업의 회생을 도울 관련 법률이 국회의 파행으로 효력을 상실한 사실이다.

경제불황으로 가속화된 기업 부실은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외부감사 대상기업 2만3273곳을 분석한 결과 이자보상비율(이자비용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5.1배로 1년 전(7.35배)에 비해 크게 낮아졌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내는 기업이 줄었다는 뜻이다. 특히 3년 연속 좀비기업은 1년 새 8.7% 늘었다.

문제는 경제난이 지속돼 좀비기업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부도기업도 크게 늘고 있다. 올 들어 8월까지 어음부도액은 3조6282억 원으로, 201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8월까지 집계인데도 8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부도는 급증하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한계상태에 이른 기업이 늘었다는 뜻이다.

한계기업은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옥석을 가려 퇴출시키는 구조조정 절차를 밟아야 전체 경제에 충격을 줄일 수 있다. 때를 놓치면 다른 기업들까지 도미노로 부실에 빠질 우려가 커진다.

한국의 잠재성장률 2%

한국이 1%대 잠재성장률 시대에 들어섰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망이 나왔다. OECD는 올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9%, 내년은 1.7%로 추정했다. 잠재성장률은 한 나라의 경제가 물가 급등이나 경기 과열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경제의 기초체력을 의미한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이렇게 경제의 기초체력이 무너지고 저성장이 고착하는 게 바로 위기다.

한국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고질적인 기업 규제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가 청년층이 원하는 만큼 생겨나질 않는다. 게다가 사교육비 부담과 노후 걱정이 얹어지면서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축소 사회’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의 수출주도형 경제는 최근 곤경에 빠졌다. 미·중 패권 경쟁이 과열되고, 국제분쟁 지역이 늘어나면서 공급망이 교란되고 수출 시장이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과의 ‘디리스킹(derisking)’이 본격화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약 4%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중국 외에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국가가 한국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기는 총체적이고 구조적이건만 정작 정부는 한국 경제의 비전과 위기 타개 방안을 확실히,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정 발목 잡기와 ‘방탄’의 구태 

여야가 내년 4월 총선을 5개월 보름 앞두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여야가 민심에 다가가려면 진정으로 반성하면서 전면 쇄신을 실천하고 경제 살리기와 민생 챙기기를 위한 실질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도 거대 야당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은 채 국정 발목 잡기와 ‘방탄’의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와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따른 반사이익을 얻겠다는 안이한 자세부터 버려야 한다.

여야는 이제라도 진흙탕 정쟁과 돈 뿌리기 선심 정책 남발을 멈추고 경제 살리기 경쟁으로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해야 한다. 여야 지도부는 이를 위해 회담 형식을 둘러싼 신경전을 멈추고 하루빨리 만나 규제 혁파와 노동 개혁 등 경제 살리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특히 회생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정상화하기 위한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연장하고 방산 기업의 무기 수출을 지원하기 위한 수출입은행의 법정자본금 확충 법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장기 저성장의 기로에 선 우리 경제가 재도약하기 위한 발판으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 철학과 도전·창조·혁신의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국경영학회가 18일 주관한 ‘이건희 회장 3주기 추모, 삼성 신경영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국내외 석학들은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키워낸 이 선대회장의 도전적 경영과 창조적 혁신이야말로 한국에 필요한 성공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대표되는 이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했다. 이 선대회장의 미래에 대한 상상력과 통찰력이 없었다면 삼성은 물론 우리 경제의 모습도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부단한 혁신과 도전은 필수다. 특히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 속에 기업 경쟁력이 정체되고 경제의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지금이야말로 우리 경제에 그의 창조 경영과 혁신 마인드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다. 삼성뿐 아니라 모든 기업들이 불굴의 도전 정신과 적극적인 투자 실천으로 미래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기업이 살아나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저성장의 늪에 빠진 우리 경제도 다시 성장 궤도에 오를 수 있다.

그러려면 정부와 국회가 앞장서서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야당이 무분별한 파업을 조장할 우려가 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을 밀어붙이는 것은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정치권이 의지를 갖고 노동 개혁과 규제 혁파 등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 <YS 대권전쟁>, <최후의 승자>, <영원한 승부사>, <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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