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여자들이 킬킬대며 떠드는 통에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야참 먹을 때가 되었다.
물론 여자들은 안 먹을 게 뻔-했다. 나는 보라는 듯이 교자상을 펴고 반찬통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꺼내 놨다. 밥을 한 사발 그득히 퍼 가지고는 꾸역꾸역 퍼먹었다. 먹고 난 후에는 남은 반찬을 모두 다 버리고 통들을 깨끗이 설거지했다.
통에 있는 물기를 없애려고 싱크대에 홱홱 뿌려가며 차곡차곡 가방에 주워 담았다.
“반찬통을 왜 다- 싼-대유?”
구 여사가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새벽 6시에 사인을 하고, 흉측한 수화기를 들고 감독에게 전화를 했다.
“나 김정잔데, 지금 사표 쓸 테니까—사표 받으러 와요”
“이 아줌마가 미쳤나? 들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그만 둔단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아줌마가 죽고 싶어?”
징글징글하게 끔찍하고도 소름 돋는 목소리가 버럭 대며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야- 이게 어디서 반말을 찍-찍-해대는 거야? 당장 와서 사표 수리 안 하면 지금 바로 경찰에 고발한다.”
“아줌마, 알았으니까 거기 있어요.”
백화점에 일하러 온 후 처음으로 감독한테 ‘요-’라는 소리를 들은 셈이다.
여자들이 내 뒤로 웅성-웅성 소리도 못 내며 감독의 허락을 받지 못해 우두커니 서있었다.
약 10분 후에 감독이 왔다.
감독은 서랍에서 사표 용지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대단한 아주머니, 사표 용지 여기 있으니까 쓰시고 싶은 대로 쓰-세요.”
나는 사표 용지의 사직 사유란에 이렇게 적었다.
‘나 김정자는 파리왕국인 이 백화점에서는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인간이기 때문이므로….’
감독이 한참 사표를 들여다보았다.
“아저씨, 본사 전화번호 좀 적어갑시다.”
나는 주머니에서 볼펜과 종이를 꺼냈다. 감독이 순순히 본사 등록증을 내놓았다. 나는 꼼꼼히 본사의 모든 인적사항을 적었다.
그러고는 유유히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나는 파리가 아니야, 파리가 아니야, 라고 되뇌면서….’ (끝)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2010년 백화점 청소일 당시의 체험소설이며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8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