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정치혐오 확산해 직접민주주의 위협… "靑, 보완하는 수술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정당해산 맞불’로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선 가운데, 일각에서는 직접 민주주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국민청원이 역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치혐오를 확산하고 실제 여론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에서다.
정당 해산 맞불에 북한 배후설까지… 與 “민심 반영” vs 野 “민심 왜곡”
지난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은 3일 174만 명을 넘어 역대 최다 기록을 경신했다. 청와대 공식답변 기준선이 되는 20만 명의 아홉 배에 가까운 숫자다.
청원글 작성자는 한국당에 대해 “국민의 막대한 세비를 받는 국회의원으로 구성 되었음에도 걸핏하면 장외투쟁과 정부 입법 발목잡기를 하고, 소방에 관한 예산을 삭감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비판하며 “이미 통진당(통합진보당) 해산 판례가 있기에 반드시 해산 시켜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기를 간곡히 청원한다”고 주장했다.
위 글이 화제에 오르자 일주일 후 ‘맞불 청원’도 등장했다. 역으로 민주당을 해산해 달라는 것이다. 민주당 정당해산 청구는 3일 오후 현재 약 30만 명에 달해 마찬가지로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이에 대해 여당 측은 ‘민심 반영’, 야당 측은 ‘민심 왜곡’을 주장하며 팽팽히 부딪히고 있다.
민주당 이재정 대변인은 지난 1일 현안 브리핑에서 한국당 해산 청원이 “150만 명을 넘어선 민심”이라며 “장외투쟁이나 발목잡기를 그만두고 제1야당의 책임감을 가지고 국민을 위해 일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식 대변인도 3일 현안 브리핑에서 “청원 숫자는 민의의 중요한 바로미터”라며 “한국당이 ‘숫자는 의미 없다’는 둥 애써 부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한국당은 ‘북한 배후설’까지 주장하며 청와대가 민심 조작을 통해 민주주의의 타락을 부추긴다는 입장이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달 18일 ‘우리민족끼리’에서 한국당 해체만이 답이라고 말한 지 4일 만에 청원이 올라왔다. 북한이 하라는 대로 대한민국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의심하며 “청와대 청원이 국민을 편 가르고 싸우게 만들어 민주주의의 타락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국민청원, 정치혐오 확산해 직접민주주의 위협… 靑, 보완하는 수술 필요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국민청원 게시판이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현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정당해산 맞불’로 촉구된 현 사태가 정치혐오를 확산하고, 나아가 실제 여론마저 왜곡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국민청원 게시판의 존재가치였던 ‘직접민주주의 실현’에 독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지난 1일 자신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 촉구글 올린 한 30대 남성은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서명에 참여한)사람들이 정말 한국당이 해산될 것이라고 생각하겠느냐”고 반문하며 “지금 정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국당 또는 민주당의 정당 해산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행법상 정당 해산의 권한은 헌법재판소에게 있으며, 양당의 활동이 통진당 해산의 원인이 된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처럼 민주 질서를 심각하게 위배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청원은 정쟁(政爭)의 도구로 그치기 쉽고, 이로 촉발된 정쟁이 국민들의 정치 혐오만 재생산한다는 지적이다.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이기도 한 강상호 한국정치발전연구소 대표는 이날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아이디를 1인 당 4개까지 만들 수 있어서, SNS를 활발하게 이용하는 집단의 여론 조작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 불신이 해결되지 않으면 정치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청와대는 ‘국민이 물으면 정부가 답한다’는 직접민주주의 실현 취지로 국민청원 제도를 신설한 바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직접 민주주의 수단으로 만들어진 국민청원이 오히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냐고 비판하는 상황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년 전 한 토론회에서 “국민 청원이 깊은 논의가 필요한 이슈를 즉흥적으로 요구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꼬집은 바 있다.
강상호 대표 역시 “상당히 민감한 사회적 갈등 이슈도 전부 다 (청와대 답변 대상으로)허용해야 할 필요는 없다. 국민 통합을 해치고 갈등을 야기하는 법률적인 문제는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하며 “자칫 ‘마녀사냥’으로 흘러간다면 국민청원 제도, 특히 직접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질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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