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차기 총선 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그가 어떤 지역구를 택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본인은 ‘보수의 심장’인 대구 출마를 원하는 눈치지만, 당 내부에서는 ‘험지(險地) 차출론’이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자 홍 전 대표는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험지에서만 정치해온 저로서는 이번이 정치인생 마지막 총선이 될 것”이라며 “내 출마지역은 내가 정한다. 더는 갑론을박 하지 말라”고 밝혔다. 사실상 험지 차출을 거부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다. “험지에서만 정치를 해 왔다”는 홍 전 대표의 말은 정말 사실일까. <시사오늘>은 홍 전 대표가 당선됐던 세 지역(서울 송파갑·서울 동대문을·경상남도)의 이전 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주장의 신빙성을 따져 봤다.
서울 송파갑
서울 송파구가 선거 지도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88년이다. 1975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한강 이남이 강남구로 분리된 뒤, 강남구 탄천 동쪽이 강동구로 떨어져 나오고, 거기서 또 일부가 분구돼 만들어진 지역이 송파구다.
이런 이유로 송파구는 1988년 총선에서 자신들의 첫 대표자를 선출하는데, 제13대 총선 송파갑 당선자는 통일민주당 김우석 전 의원이었다. 김 전 의원은 2만7627표를 얻어 민정당 조순환 후보(2만2538표)와 평민당 남현식 후보(2만1884표), 공화당 조용직 후보(1만8221표), 무소속 허경구 후보(1만6343표)를 꺾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김 전 의원은 제14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만다.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창당한 통일국민당의 돌풍에 힘입어, 국민당 조순환 후보(5만941표)가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충격적인 것은 현역이었던 김 전 의원 득표수(4만7513표)가 민주당 김희완 후보(4만8962표)보다도 적었다는 점. 그야말로 송파갑은 ‘혼돈의 지역구’였던 셈이다.
그로부터 4년 뒤, 이 지역에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 홍 전 대표다. 신한국당 후보로 나선 홍 전 대표는 4만1257표를 얻어 국민회의 김희완 후보(3만1630표)와 자민련 조순환 후보(1만4542표)를 누르고 여의도에 입성했다. 그 이후 송파갑은 한국당 계열 정당의 ‘텃밭’이 됐지만, 홍 전 대표가 출사표를 던졌을 당시만 해도 송파갑은 ‘험지’라는 단어가 적합한 곳이었다.
서울 동대문을
그렇다면 홍 전 대표가 세 번 당선됐던 서울 동대문을은 어떨까.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동대문을 지역구 당선자가 된 인물은 민정당 김영구 전 의원이었다. 김 전 의원은 3만4821표를 얻어 평민당 고광진 후보(3만2017표), 민주당 송원영 후보(2만3364표), 공화당 김태웅 후보(1만5352표)를 꺾었다.
4년 후에는 민자당 김영구 후보가 4만9700표를 획득, 민주당 고광진 후보(4만6962표)와 국민당 윤금중 후보(1만3069표)를 눌렀으며, 제15대 총선에서도 신한국당 김영구 후보가 3만7871표를 얻어 국민회의 김창환 후보(2만9482표)와 민주당 김성식 후보(1만2177표)에 앞서 당선증을 받았다.
제16대 총선에서도 한나라당 김영구 후보가 3만4796표로 3만4785표에 그친 민주당 허인회 후보를 11표 차로 제치고 6선(전국구 재선)에 성공했다. 홍 전 대표가 나서기 전 네 차례 선거에서 민정당-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진 보수 정당 후보들이 모두 승리를 거둔 것이다.
다만 득표수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동대문을은 TK(대구·경북)나 강남처럼 보수 정당이 ‘절대 우위’를 지닌 지역구라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1992년 제14대 대선에서는 민주당 김대중 후보(5만1951표)가 민자당 김영삼 후보(4만7346표)보다 더 많은 표를 얻었으며, 제15대 대선에서도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5만565표)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4만2124표)를 이긴 바 있다.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 조순 후보(4만2096표)가 민자당 정원식 후보(2만499표)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고, 1998년 제2회 지방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 고건 후보(3만5979표)가 한나라당 최병렬 후보(2만9739표)에게 승리를 거둔 지역이 동대문을이다. 홍 전 대표 자신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에게 패하며 물러났을 정도니, 험지라고 해도 큰 무리는 아니다.
경상남도
반면 경상남도의 경우에는 험지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2012년 제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민병두 의원에게 패배하며 5선에 실패한 그는, 김두관 전 지사의 제18대 대선 출마로 공석이 된 경상남도지사 자리에 도전장을 던졌다.
김 전 지사는 진보 성향의 정치인으로 알려진 인물. 도지사 사퇴 역시 제18대 대선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전임 지사인 김 전 지사가 진보 성향이라고 해서, 경남을 험지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알려진 대로, 경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까지 보수 정당의 ‘텃밭’으로 기능해왔다. 제14대 대선에서 민자당 김영삼 후보가 무려 72%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제15대 대선에서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게 55%의 표가 쏠렸다. 심지어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의 득표율도 31%를 상회했다.
제1·2·3대 도지사도 민자당·한나라당 소속 김혁규 전 지사였고, 제4회 지방선거에서도 한나라당 김태호 후보가 당선됐다. 제5회 지방선거에서는 김두관 후보가 승리를 거뒀지만,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인 현지 여론을 고려해 당에 입당하지 않고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렀을 정도. 본인은 “2012년 경남도지사 보선으로 민주당에 빼앗겼던 경남지역을 되찾아왔다”며 경남도지사 선거를 험지 출마 예시 중 하나로 언급했으나,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던 송파갑이나 동대문을과는 달리 경남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평이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