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등이 말하는 진실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개발과 환경, 오랜 기간 논쟁해온 가치다. 논쟁 끝 2020년 한국이 결정한 방향은 환경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저녁 ‘2050 대한민국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이는 2018년 우리나라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48차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근거한다. 이번 국회 역시 여느 때보다 환경 보호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국회는 지난 10월 ‘기후위기 비상대응 촉구 결의안’을 전 세계에서 16번째로 통과시켰으며, 이번 국회에서 가장 많이 설립된 의원연구단체 분야는 ‘그린뉴딜’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2년 전, 개발과 환경에 대한 입장 차가 극명하던 때가 있었다. 논쟁의 중심엔 ‘4대강 사업’이 있다. ‘환경이 파괴될 것’이라는 야당과 시민단체, ‘경제가 발전할 것’이라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팽팽히 맞섰다. 이후 올 여름엔 잇따른 집중호우로 논란이 재점화 되기도 했다. 미래통합당(現 국민의힘)은 ‘4대강 사업이 홍수 피해를 막았다’고 주장하는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4대강 사업이 피해를 키웠다’고 맞섰다.
오늘날 우리가 결정하는 무수히 많은 가치는 과거의 선택에 영향을 받아왔다. 12년 전 우리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었으며, 그 길 위에서 정치는 무엇을 택했는가. <시사오늘>은 매번 역대 대통령들의 입을 빌려 당신에게 일종의 ‘기억재생장치’를 선사해왔다. 이번 스물아홉 번째 ‘대통령 회고사’는 2008년 4대강 사업이다.
2006~2007년. 프롤로그
‘4대강 사업’의 서막은 2006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이 처음 구상한 아이디어는 ‘한반도 대운하’였다. 제17대 대통령 선거 준비로 바쁠 시기, 그는 유럽을 향했다. 유럽 탐방은 그가 내세운 핵심 공약인 대운하 건설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현대에서 일하는 동안, 그는 운하로 연결된 유럽 전역의 수로망에 관심을 가졌다. 당시 우리 상품의 경쟁력을 저하하는 주요 원인을 ‘물류비용’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되고, 기업인으로서 갖고 있던 문제의식을 해결할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 운하가 건설되면 물류비용이 절감되어 우리 상품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수자원 확보와 관광사업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어 일석삼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51쪽.
귀국 후, 한반도 대운하 건설 공약을 17대 대선의 핵심 공약으로 가시화했다. 류우익 원장을 비롯한 국제전략연구원을 중심으로 정책 개발이 이뤄졌다.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경부 운하 △영산강의 호남 운하 △금강의 충청 운하를 우선 건설할 뒤, 나머지 강줄기들을 수로로 연결할 계획이었다. 그의 구상은 총 17개 노선의 3100km의 수로망이었다.
그러나 그의 원대한 꿈은 환경파괴 논란에 휩싸였다. 240개 시민단체는 ‘경부운하 반대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학계와 정치권에서도 위험성을 우려하며 경고했다.
반대 끝에 2008년 대운하 추진 포기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후 2009년 제18차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도 “정부에 대한 불신의 벽이 너무 높구나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며 “이 기회에 분명하게 대운하를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씀 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우리의 정치 환경에서는 아직 정책이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며 “대운하 사업이 경제나 환경문제를 넘어 정치문제로 변질돼갔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한국의 미래를 위해 운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믿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국회 예산 통과가 힘든 상황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인다면 실효도 없이 국론을 더욱 분열시킬 소지가 컸다. 물길을 따라 우리 국민들의 마음을 엮어 통합해나가고자 했던 대운하가 오히려 국론을 분열시키는 요인이 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59쪽.
2008~2009년. 4대강 살리기로 전환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각국의 정상들은 재정 지출을 늘리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한국 역시 새로운 경기 부양책을 모색했다. 그 결과 2008년 12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보고했다.
대운하 계획의 핵심이 인공 수로 건설이었다면, 4대강 사업은 하천 정비였다. 정책은 한강과 낙동강과 연결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 건설 대신, 기존 4개 하천 정비로 전환됐다.
이명박은 매년 홍수로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하고, 수조 원의 복구비용이 든다는 심각성을 들었다. 논의 끝 위원회는 2009년 6월 15조 3천억 원의 4대강 살리기 마스터 플랜(종합 계획)을 확정했다.
우리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환경 개선과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국제사회의 두 가지 요구를 한꺼번에 만족시키면서 적시에 추진될 수 있었다. 실제로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국이 세계 금융위기를 다른 OECD 국가들보다 빨리 극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시에 한 해 수백 명의 인명 피해와 수조 원의 재산 피해를 내는 수해에 대한 근원적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기초가 됐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64~565쪽.
4대강 사업 역시 반대에 부딪쳤다.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야당의 충돌이 빚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이정희 당대표는 끌려 나가다 실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기국회 내 예산안 처리에 대해 “나는 이것을 정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이 대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예산안을 12월 2일까지 처리하라는 절차규정을 ‘목적규범’인양 뒤바꿔 민주주의를 무너뜨렸다”며 “헌법이 끝끝내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이지, 12월 2일이라는 시한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민주주의 이해는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데 멈춰있다”고 꼬집었다.
계속해서 시민사회를 비롯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등 야3당은 2010년도 예산안에 포함된 4대강 예산 전액 삭감을 요구했다. 2009년 12월 29일 밤 촛불문화제를 필두로 30~31일 국민대회도 개최했다. 이들은 4대강 사업 예산을 전면 폐기하고 민생 예산을 증액할 것을 촉구했다.
2009년 마지막 날, 한나라당은 회의장 변경을 통해 2010년도 예산안을 단독 처리했다. 야당 의원들이 예산특별위원회 개최를 막으러 가는 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292조 8천억 원의 예산안은 20여 분만에 통과됐다. 그중 4대강 관련 예산은 정부 원안보다 4천억 원 삭감된 4조 8602억 원이었다.
이명박은 반대론자들의 환경 보존에 대해 “4대강을 있는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결코 환경을 보호하는 일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있는 그대로의 4대강을 보존해야 하는데 4대강 살리기 사업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주장이었다. 자연을 손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고전적인 환경보호론의 입장이었다.
우리의 4대강이 아마존 강이나 콩고 강처럼 인간과 동떨어져 자연 속에서 존재한다면 그들의 주장이 옳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강들은 국토를 관통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접해 있다. 그로 인해 4대강은 이미 자연 그대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68~569쪽.
2010~2011년. 4대강 사업 추진
2009년 7월 영산강 유역을 시작으로 추진 중이던 사업은, 예산안 통과 이후 박차를 가했다. 이후 2011년 10월 4대강살리기추진본부는 2년 만에 완공을 선언했다. 전국에서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6개 보 중 9개 보에서 누수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국토해양부는 누수현상이 발견됐으나, 안정성에는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4대강 범대위는 기자회견을 열고 “보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은 초단기, 초날림, 속도전으로 4대강 사업을 강행한 부실공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통상적으로 공사기간이 7년 이상 걸리는 게 상식이나,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에 4대강 사업을 완공하기 위해 2년이란 기간을 정해 놓고 속도전으로 밀어붙였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명박은 동남아 메콩 유역의 5개국 외교부 장관을 접견한 사실을 부각했다. 타이를 비롯해 모로코, 파라과이, 페루, 알제리 등 많은 국가들이 4대강 현장을 방문 후, 정부와 기술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해(2011년)에는 이상기후로 인해 세계 각국에 많은 비가 내렸다. 타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홍수로 인해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입었다. (중략) 타이가 엄청난 수해 피해를 입는 과정에서 잉락 총리는 한국의 수해 현황을 눈여겨본 것 같았다. 잉락의 친서에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기술을 공유하고 싶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중략) 한국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눈여겨본 것은 타이만이 아니었다. (중략) 내가 과거 독일의 RMD 운하를 부러워했던 것처럼 우리의 4대강이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대상이 된 것이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72~573쪽.
2012~2020년. 계속되는 논란
4대강 사업은 끝났으나, 논란은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총 네 번의 감사가 진행됐다.
1차 감사는 2010년 사업 초기 단계에 진행됐으며, 결과는 1년 후에 발표됐다. 감사원은 총 20개 지적사항을 명시했다. 국토부는 그중 10개 사항은 시정했고, 9개 사항은 1~2개월 내에 조치 완료할 예정이며, 1개 사항은 전문적인 기술검토를 거쳐 조치할 예정이라 밝혔다. 1차 감사 결과 예비타당성조사 등에서 큰 문제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하상 퇴적토를 걷어내고 노후 제방을 보강하거나 신규 다목적댐 건설 등 차질 없이 시행될 경우 홍수방어능력이 크게 증대될 것(9.2억㎥)”이라며 “향후 기후변화 등에 의한 홍수에 대비하고, 장래 물 부족 해소와 가뭄 극복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2차 감사는 2012년 사업 마무리 단계에 진행됐으며, 4개월 후 발표됐다. 감사원은 사업 종료를 앞두고 주요 시설물의 안전성, 수질오염 및 유지관리방법의 적정성에 대해 조사했다. 감사원은 “설계부실로 총 16개 보 중 11개 보의 내구성이 부족하다(국토해양부)”며 “불합리한 수질관리로 수질악화가 우려되는 한편, 비효율적인 준설계획으로 향후 과도한 유지관리비용 소요 예상된다(환경부·국토해양부)”고 지적했다.
3차 감사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시절, 사업 완료 후 진행됐다. 2012년 공정위원회가 입찰담합 처리를 임의로 지연하고, 국토부가 담합을 묵인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의 담합 발생 원인 규명 및 국민 의혹 해소에 초점을 맞췄다. 당시 감사원은 4대강 사업이 한반도 대운하 재추진을 염두에 뒀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이명박은 이에 대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라 반박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한 위장 사업이라는 비난도 있었다. 내 임기가 5년 단임이고, 여야의 유력한 대권 후보들이 대운하 사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상황에서, 내가 대운하를 만들기 위해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벌였다는 것은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이었다.
- 이명박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570쪽.
4차 감사는 2017년 문재인 정부 시절 진행됐다. 사업 종료 후 5년이 지난 시점에도 논란이 여전해 이를 종결지을 수 있는 감사를 진행하는 것이 목표였다. 감사원은 앞선 1~3차 감사와는 달리 사업 결정과정부터 법적절차 및 사업진행 등 사업 추진 과정을 감사했다.
경제성 분석 결과에 따르면, 비용 대비 편익 비율(BC)은 0.21로 나타났다. 대규모 국책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는 BC가 1에 근접하거나 넘을 것을 요구한다. 총 편익 6.62조여 원, 총 비용은 31조여 원으로 분석됐다.
바른미래당 김수민 원내대변인은 “같은 사안에 대해 정권 입맛에 맞는 상이한 결론을 낼 수 있는 감사원의 놀라운 처세와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정부시기에 따라 다른 감사 결과가 나온 점을 지적했다.
한편 논란은 2020년까지 이어졌다. 여름에 집중호우가 잇따르자, 4대강 사업에 대한 여야 평가가 엇갈렸기 때문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4대강이 홍수를 키웠다고 하는 사람을 데려와 달라”며 “모래를 걷어내고 물 그릇을 4배 키운 게 어떻게 홍수 예방에 도움이 안 되는가”라 말했다. 그러자 이낙연 당시 당대표 후보는 “적어도 일의 순서는 잘못됐음이 틀림없다”며 “마치 계단 물 청소를 밑에서부터 한 것과 같다. 소하천이나 세천 준설을 먼저 했어야 (수해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정책이 정치를 이기지 못한다”
정권은 분절적이지만, 정치는 연속적이다. 12년 전 이명박 정부가 택한 결과가 문재인 정부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이유다. 여야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통과된 4대강 사업은 수년이 흘러도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됐다. 2020년 집중호우로 4대강 사업의 효과에 대한 갈등이 다시금 빚어진 것만 봐도 그렇다. 어쩌면 8분 만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 후 가결된 공수처법 역시 수년 후에도 논란이 반복될지도 모를 일이다.
반대로 좋은 영향도 마찬가지다. 문 정부는 76조 원의 한국판 뉴딜 추진을 공식화했다. 여기에 ‘그린 뉴딜’이 포함돼있다. 일각에서는 그린 뉴딜과 MB 정부의 녹색 성장의 유사성을 근거로,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5월 간담회에서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왔다”며 “외환 위기에는 정보기술(IT) 산업을 일으켰고, 글로벌 경제위기에는 녹색산업을 육성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책의 탄생은 특정 정권의 몫일지라도, 정책의 영향은 우리 모두의 정치의 몫이다. 이제는 정치 논리와 공세를 넘어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을 판단할 수 있어야 할 때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논쟁을 제쳐두고, 그의 말은 다시금 곱씹게 된다.
“우리의 정치 환경에서는 아직 정책이 정치를 이기지 못합니다.”
좌우명 : 행복하게 살자
개발 지상주의의 재앙을 살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