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선으로 ‘여론 조작’ 강력 단속해야”
“여론 조사 왜곡은 국기 흔드는 중범죄”
“사이비 언론, SNS 타고 국민들 기만”
“웬만한 조작엔 이제 ‘그러려니’하는 단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욕하면서도 믿는 게 언론이다. 특히 여론조사 같은 통계의 경우 개인이 매스미디어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여론조사 내용을 거의 철석같이 믿게 된다.
그 내용과 흐름이 내 생각과 다르면 ‘내가 잘 못 생각했나?’라며 스스로 ‘판단 재조정작업’에 들어갈 정도다. 여론조사든, 조작이든 여론조사기관들은 그렇게 언론을 매개로 해서 국민들한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조작된 국가 통계가 국가의 기반을 흔들고 가짜뉴스가 국민 의식을 흐릿하게 하듯이 조작된 여론조사는 국가의 방향을 오도(誤導)하게 마련이다. 웬만한 흉악범죄 이상으로 국기(國紀)를 뿌리부터 흔드는 대형 범죄로 봐야 한다.
함량 미달 업체 난립 현황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기관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여심위)가 올해 들어 여론조사기관 88개 가운데 34%인 30곳에 대해 등록을 취소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등록 기준을 높인 데 따른 것이다.
여론조사를 분석하는 전문인력을 종전 1명에서 3명 이상으로, 상근직원 수를 3명에서 5명 이상으로 늘린 정도다. 그랬더니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30곳이 기준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기가 막힌 얘기다. 막중한 국가의 업무를 대행하는 여론조사기관의 등록기준이 이제까지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었다는 점에 놀라고, 기껏 그 정도 등록 요건도 못 채운 업체가 전체의 3분의 1을 넘는다는 점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그런 정도의 업체들이 하는 여론조사를 우리들이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17개 업체는 2017년 선거여론조사기관 등록제 시행 이후 공표용 조사 실적이 전무했고 3년째 실적이 없는 업체도 20곳에 달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간판만 내건 업체가 적지 않았고 그들을 방치해 뒀다고 선관위가 스스로 밝힌 셈이다.
이 업체들을 그대로 뒀으면 총선이 임박해 떴다방식 엉터리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아 여론을 왜곡했기 십상이다. 하긴 이들뿐이겠는가. 나머지 업체들도 정도의 차이는 조금씩 있을지언정 대부분 도긴개긴일 터다.
근본적인 문제는 업무 성격에 비해 등록기준이 너무 허술해 반짝 돈벌이하러 달려드는 업체들이 많다는 데 있다. 실제로 업체 수가 다른 나라와 비교해 엄청나게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우리는 이번에 등록 취소된 업체들 빼고도 58곳이나 남아있는데 비해 일본의 여론조사기관은 20개, 프랑스는 13곳에 불과하다.
당연히 이 영세업체들이 함량미달의 인터넷 언론사와 잠시 동업하는 형태로 운영할 수도 있고, 특정 정당에 유리한 조사 결과를 내놓아 정치권과 결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론조사의 실태가 그러하니 여론조사기관마다 ‘장담하며 내놓는 여론’이란 게 얼마나 엉터리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론 조작’은 중범죄로 다스려야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중앙여심위)는 지난 19일 여론조사 내용을 조작한 A업체에 대해 과태료 3000만 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4.10 총선 관련해 '선거여론 조사기준' 위반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여심위에 따르면 이 업체는 일부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가족과 지인 명의의 휴대전화 번호로 사용했고 또 지지 정당에 대한 피조사자 응답 내용을 허위로 기재했다. 전북여심위는 내년 상반기 실시가 예상되는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 입후보예정자 B 씨와 여론조사기관 대표 C 씨가 공모해 지난해 12월 ‘1인 인지도 조사’ 등 선거여론조사를 실시한 것을 사전 선거운동 혐의로 고발 조치했다.
중앙여심위는 “총선을 앞두고 선거여론조사 시행 빈도가 급증하고 있다”며 “자체 모니터링 및 위반행위 심의·조사를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과태료? 그만한 조치로는 어림도 없다는 게 우리 판단이다. 여론조사기관들의 아이템 선정, 설문 내용, 질문 방법 등이 함량미달인 데다가 일부에서는 특정 목적을 띈 불순한 성격의 조사까지 여전히 벌어지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상화로의 갈 길이 멀고도 멀다. 부실 여론조사의 폐해 정도에 대한 선관위의 판단과 우리의 판단 간에는 작지 않은 괴리가 있어 보인다.
그 여론조사를 입맛에 따라 전재하는 사이비 언론과 삼류 SNS 등에 대한 별도의 조치도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우선은 주범 격인 여론조사(조작) 기관부터 퇴출하고 이후에 언론매체 대책에 나서는 게 순서일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가는 통계학,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여론 및 선거, TV 시청률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실시하는 전문 직종이다. 최상위 고급인력으로 분류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여론조사 시장에는 우수한 전문가들이 제대로 대접받으며 일할 풍토가 아직 조성돼 있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정예화할 유일한 해법은 업체부터 정예화하는 길뿐이다.
결론은 또 정치권 문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분야는 두 말이 필요 없이 정치권이다. 그 정치권을 구성하는 기초작업 중의 하나가 여론조사다. 여론조사 결과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뽑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런 여론조사 결과가 업체마다 심하게 들쭉날쭉하고, 민감한 시기에 의도적인 설문조사나 하고, 조사 내용도 눈에 띌 정도로 특정 집단에 유리하게끔 짜여 있다면 당연히 정치개혁도 요원하다는 얘기가 된다.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했다고 해서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은 안이하다. 엄격한 허가제로 가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한다.
앞서 대충 지적했듯이, 엉터리 여론조사는 가짜뉴스로 이어져 엉터리 국가 통계와 함께 국가 근본을 뒤흔든다. 지난 몇 년간의 혼란스러웠던 여론조사 시장과 그 폐해를 들여다보면 그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실은 선거 여론 조작을 부추기는 진짜 주범은 따로 있다. 국민의힘에 유리한 여론 조작,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한 여론조작이 왜 생겨날까? 결국은 또 정치권으로 귀결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기관과 일부 언론기관뿐만 아니라 사법부까지 쥐락펴락하며 한없이 비대해지고 있는 정치권력은 이제 대폭 축소돼야 한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