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까치 덕에 외롭지 않아 [일상스케치(105)]
스크롤 이동 상태바
물까치 덕에 외롭지 않아 [일상스케치(105)]
  • 정명화 자유기고가
  • 승인 2023.12.10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까치 무리와 길고양이, 그리고 바람 바람 바람
나에겐 황량한 농촌 겨울 생활의 다정한 친구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날씨가 겨울인가 싶게 며칠째 따스하다. 다음 주엔 비 소식이 있던데 다시 추워지겠지….

추수가 다 끝나고  텅 빈, 동면에 든 시골 마을엔 물까치들 천국이다. 새벽을 깨우는 건 꼬끼오~ 하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아니라 지붕 위로 날아다니는 물까치 군단들의 재재거리는 소리다.

자연으로의 회귀

도회지와 시골의 이중생활을 시작한 지 언 10여 년이 되어 간다.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따라 오르내리며 사는 생활을 반복해 왔는데, 장단점이 있다. 얻는 게 있으면 반드시 결핍된 장치도 공존한다. 도심은 편리함과 시멘트의 삭막함이 동시에 존재한다.

이에 반해 시골, 전원생활은 도시 문명이 부족해 불편함이 뒤따른다. 시골 주택 살이를 하게 되면 도심과 거리도 있고 일상생활, 교통 및 여름엔 풀과의 전쟁 그리고 겨울엔 난방문제 등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생각만큼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진 않지만, 자연이 주는 은혜와 청정한 공기를 만나 정서적으로 여유롭고 서정적인 풍광을 맛볼 수 있다.

지병인 유방암 치료가 끝나가 병원에 들릴 일이 잦아들었다. 더불어 마당의 잔디밭에서 맨발걷기도 할 겸 여타의 목적으로 귀촌을 했다. 다만 시골집은 인적이 드문 벽촌이라 간혹 사람이 그립다. 그럼에도 만물이 소생하는 봄부터 가을까지는 갖가지 꽃들과 수목이 벗이 된다. 그리고 겨울엔 그 자리를 메꾸는 게 길고양이와 새들, 바람이다.

물까치 한 마리가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을 먹고 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다. ⓒ연합뉴스
물까치 한 마리가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을 먹고 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같다. ⓒ연합뉴스

지상의 터줏대감 길고양이와 천상의 무법자 물까치

특히 물까치의 존재가 우리 집 겨울엔 빛을 발한다. 물까치는 도심에서 흔히 보는 까치보다 몸집은 조금 작다. 그러나 긴 꼬리와 날개 위로 연한 하늘색 연미복을 걸친 생김새가 까치 못지않게 멋을 잔뜩 부린 우리 고유 텃새다.

주로 물가에 모여 살아 물까치라 부른다. 늘 마을 주변에 있는 텃새지만 계절마다 지내는 곳이 다르다. 겨울 동안에는 감나무 주변과 전신주 줄 위에서 떼 지어 노닐다가 겨울이 끝나 가면 어디서 번식하면 좋을지 알아보는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게다가 물까치는 한 성깔해서 새끼에게 손이라도 댔다가는 두고두고 앙갚음을 당한다. 바닥에 떨어진 새끼를 멋모르고 물고 간 고양이들은 부모 새로부터 맹렬한 쪼임을 당하게 된다. 심지어는 사람에게 달려든 경우도 뉴스를 탔다.

하지만 한적하고 쓸쓸한 겨울엔 무척이나 반가운 존재다. 아침마다 짖어대는 울음소리는 흥겨운 음악처럼 친근하다. 이미 헐벗은 감나무엔 홍시 몇 알이 불그레 남아 물까치들의 먹이 노릇을 한다. 물까치가 감 옆에 앉아 있는 모양새가 환상의 하모니를 이룬다.

어느 날부터 물까치 떼 수십 마리가 안마당까지 찾아온다. 알고 보니 고양이 밥을 채취하기 위해서였다. 물까치 들은 고양이 사료로 넉넉히 배를 채웠다. 먹성이 장난 아니었다. 강원도 친구네 물까치는 마당에 심어 놓은 블루베리와 대추를 다 쪼아 먹었다니 주인을 배려 않는 물까치다.

한편, 언제부턴가 우리 집을 자기 집으로 인식, 텃세를 부리고 수시로 야옹거리며 밥 타령을 하던 길고양이 두 마리가 반려묘처럼 기생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료를 물까치 무리들이 달려들어 먹고부터 길고양이는 그 기세에 밀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물론 때가 되면 녀석들이 슬그머니 나타나겠지만.

바람, 그리고 마지막 잎새

길고양이와 물까치 외에 또 다른 존재를 친구로 삼았다. 도심 차량의 행렬 대신 뒷산의 바람과 바람에 흐느끼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마지막 잎새들이 그들이다. 찬 공기를 덤으로 주지만, 창밖 뷰로 보이는 모양새가 오히려 정겹다. 적막강산, 정적이 흐르는 산야의 황량하고 적막함을 메워주기 때문이다.

끝 끝 없는 바람
저 험한 산 위로 나뭇잎 사이 불어가는…중략…

물결 건너편에
황혼에 젖은 산 끝보다도 아름다운
아, 나의 님 바람…중략…

하늘 위로 구름 따라
무목 여행하는 그대⋯

<한대수의 '바람과 나' 중…>

바람에 나뭇가지의 움직이는 현상이 춤을 추는 듯 손짓하며 시선을 끌어 이 또한 외로움을 달래준다. 겨울이 깊어가는 나날에 대한 마지막 몸부림일지언정 생동감이 넘친다.

영원한 친구인 봄날 뜨락의  화초가 필 때까지 빈 자리를 채우며 새로운 동반자가 되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 때론 냉정한 그대일지라도 봄날을 기다리며 공생하리라.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