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콩콩팥팥'처럼 힐링 그 자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시금치와 함께 겨울 나기
겨울의 문턱에서 뭔가를 심고 싶었다. 따뜻한 봄날도 아니고 이 무슨 거꾸로 가는 발상일까 싶은데, 대상은 로망이던 겨울 시금치 재배였다. 들판은 누런 논바닥이 속살을 내비치고 있지만 겨울에도 유독 초록빛을 자랑하는 곳이 시금치 밭이다.
시골에서는 동네 어르신들이 작은 자투리땅도 허투루 두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 전문 농부들을 따라 갈 수는 없지만 흉내를 내보고자 했던 것이다. 겨울이 깊어가면 이웃 텃밭의 풍성하게 자란 시금치가 부러웠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시금치 씨앗을 구매해 파종키로 했다. 한 해 시도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반복해 가다 보면 성공으로 가는 길목을 만나지 않을까 해서다. 첫 술에 배부르랴 하며 자신을 토닥인다.
씨앗을 뿌리고 아주 엷게 이불처럼 흙을 덮은 후 씨앗이 날아가거나 사라질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비닐을 덮었다. 2주쯤 지났을까. 기대했던 아주 어린 파릇파릇한 새싹이 올라왔다.
그 희열이란! 삭막한 감성을 깨우는 건 자연만 한 게 없지 않나 싶다. 대부분 생명의 개체들이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는데, 추운 언 땅을 뚫고 나오는 자연의 생명력이 존경스럽다.
자연의 생존전략
시금치는 겨울이 제철인 채소다. 겨울에 얼었다 녹았다 반복하면서 천천히 자란 시금치가 최고다. 이는 시금치 스스로 얼지 않기 위해 잎사귀의 당도를 올리기 때문이다.
겨울철 시금치들은 가운데 뿌리를 중심으로 잎이 둥그렇게 퍼져나가 있다. 추운 겨울, 매서운 바람을 비켜서자니 땅에 바짝 엎드려야 한다. 칼바람 겨울을 살아내느라 스스로 몸을 낮추고 잎을 펼쳐 버텨내는 시금치의 생리. 이게 시금치 나름의 생존 법칙이다.
또 햇빛을 최대한 많이 받아 광합성을 하려고, 위로 자라는 게 아니라 잎을 옆으로 둥글게 펼쳐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잎과 줄기에 당분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얼어 죽지 않는다. 이 기가 막힌 시금치의 생존전략을 사람들이 달콤하게 먹는다. 시금치 뿌리를 최소한으로만 다듬고, 보랏빛 줄기를 많이 남기면 더 달달한 시금치를 먹을 수 있다.
이렇게 겨울이라는 환경에 대처하기 위해 생존전략을 고수하는 시금치를 보며 우리네 삶도 자연처럼 강인한 생존 법칙을 배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기다림
시금치가 새싹을 맺었는지 얼마나 자랐는지 차가운 마당에 나가 비닐을 들쳐 들여다보는 게 하루 일과 중 작은 행복이다.
얼마 전 종영한 tvN 예능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콩콩팥팥)>에서 4개월간 농사를 지으며 출연자들이 자신들이 가꾼 작물을 들여다보고 작은 변화에도 열광했듯이 나 역시 기대와 실망이 엇갈리는 일상이다.
새싹 앞에 쪼그려 앉아 언제 자랄지 모르는 어린 시금치 앞에서 성년이 되길 손꼽아 기다린다. 작은 성장에도 감동하고 기쁨이 배가 된다. 미물일지언정 교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편으론 여리고 연약한 생명체를 붙들고 '친구야 놀자~'하는 내 모습이 어처구니없다가도 동심으로 돌아가 시금치의 성장을 바라보며 지내는 나날들 그 자체가 힐링이다.
남녘땅, 눈이 귀한 대신 아침마다 산야에 하얗게 내린 서리도 시골 생활의 맛이다. 땅밑에서조차 내년 봄을 기다리며 모두 추운 겨울을 잘 버텨 내자고 아자아자 파이팅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러니 작은 생명체의 성장이 어떻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도시를 떠난 시골 일상은 정중동, 기다림의 연속이다. 하루하루가 그만큼 단순하다 보니 작은 변화에도 귀를 기울인다.
수확의 그날을 기다리며, 그리고 내가 직접 가꾼 시금치로 맛난 시금치나물을 밥상에 올릴 날을 미리 상상하며 설레임에 젖는다. 얼마나 성공적 수확을 할진 모르지만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며….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