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이 빨라질수록 택배기사들의 수명은 줄어든다 [기자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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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송이 빨라질수록 택배기사들의 수명은 줄어든다 [기자수첩]
  • 조현호 기자
  • 승인 2025.02.07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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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 빠른 배송 확대로 인한 경쟁 심화
쿠팡 기사의 76.8%, 야간 ‘3회전 배송’ 근무
택배업계, ‘주 5일제’ 도입…환경 개선 약속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현호 기자]

택배기사가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택배기사가 택배를 정리하고 있다. ⓒ뉴시스

최근 유통업계는 당일 배송과 새벽 배송 등 빠른 배송 서비스의 확대를 통한 경쟁력 제고에 나서고 있습니다. 빠른 배송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전략인데요. 그러나 정작 택배를 배송하는 기사들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업체들은 근무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그것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인 상황입니다.

요즘 소비자들은 물건을 주문할 때 가격만큼이나 배송기간을 중요한 요소로 꼽습니다. 가격대가 조금 높더라도 ‘당일 배송’ 문구가 적혀있다면 소비자 입장에서 그 상품에 대한 구매 욕구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요. 저녁에 급히 주문한 물건이 다음 날 아침 집 앞에 도착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택배를 받는 것이 이제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이 같은 유통업계의 빠른 배송 서비스 뒤에는 택배기사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CJ대한통운이 ‘7일 배송’ 서비스까지 도입해 택배기사들의 처우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열악한 택배 근로 환경과 관련된 택배기사들의 비극적인 사망 사례는 하루이틀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에도 쿠팡의 배송 계열사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의 택배기사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처우개선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사망한 택배기사는 야간 근무 시 물품을 인수하는 배송 캠프와 배송 구역을 세 번 왕복하는 이른바 ‘3회전 배송’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는 주에 73시간 이상을 일하며 하루 평균 279건에 달하는 택배를 배송했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노동자에게 보장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훌쩍 뛰어넘은 수치입니다. 최근 ‘워라밸’을 중요시하는 풍토와 맞물려 노동 환경 개선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마치 택배업계만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듯한데요. 택배기사들에게 주 5일제와 52시간 근무 제도를 통한 워라벨은 ‘그림의 떡’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쿠팡 택배기사들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쿠팡의 택배기사들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배송기사 767명 가운데 76.8%가 3회전 배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루 평균 250건 이상의 택배를 배송한다는 응답도 76.4%로 집계됐고, 하루 평균 근무 시간은 9시간 26분, 일주일에 평균 5.5일을 일한다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또한, 폭우와 폭설 등 악천후에도 ‘무조건 배송을 한다’는 응답이 전체의 77.0%를 차지했습니다.

최근 한진택배의 한 배송원이 고객에게 보낸 문자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문자의 내용을 살펴보면 “한진택배입니다. 물량 과다로 이제 센터에서 2회 전 물량 싣고 출발합니다. 대략 새벽 2시가 되어야 배송 완료될 것 같습니다. 배송이 많이 지연되오니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라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문자를 보낸 택배기사의 정확한 근무 시간과 환경은 알 수 없지만, 새벽까지 일하면서도 자신의 처우보다 소비자의 권리를 우선시하며 사과하는 모습은 열악한 근로 환경을 짐작게 합니다. 이를 본 소비자들은 “새벽 2시라니 말이 되나? 새벽에 내가 택배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 기사님들이 쉬지 못한다는 소리 아니냐”, “택배 기사님들의 건강이 걱정된다”, “새벽 배송, 빠른 배송 전부 필요 없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택배업계는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개선책을 내놓으며 진화작업에 나섰습니다. 대표적으로 CJ대한통운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는 택배기사들의 주 5일제 도입을 단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대리점과의 협의 문제와 택배기사들의 수입 감소 등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CJ대한통운은 올해부터 7일 배송을 시작한 상황이기에 주 5일제 시행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됩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빛 좋은 개살구’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택배기사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배송이 늦어지는 것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택배업계가 근무 환경 개선에 대한 약속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빠른 배송만큼이나 근로 환경 개선도 신속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담당업무 : 의약, 편의점, 홈쇼핑, 패션, 뷰티 등을 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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